저수지 가는 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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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회

목장은 진강산과 길상산이 서로 연한 데에 축장하였다. 둘레가 41리인데 국마 천오백 필을 놓아먹인다라는 기록이 세종실록 지리지에 있다. 진강산과 길상산이 이어진 곳이라면 이곳 길직리쪽일 것이다. 길직리에는 말이 물을 먹었다는 마그내란 지명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길상산 목장을 진강산까지 넓히라는 대목이 있다. 이에 대하여, 목장 땅이 비옥하여 풀이 충분하니 목장을 넓힐 필요 없다는 상소문도 실려 있다. 조선시대 때부터 이곳의 땅은 비옥했었나보다.

길이 갈라지고 새로 들어선 펜션 이정표가 나타난다. 펜션의 이름에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러나 펜션 건물이 들어선 곳에서 붉은 황토밭은 숨을 멈춘다. 봄이면 곡식이든 잡초든 새싹을 틔우던 황토는 어리둥절 답답하다. 이 무겁고 어두운 세월이 얼마나 길게 이어질 것인가. 황토밭으로 들어가 제법 크게 자란 감자 싹을 만져본다. 겨울을 난 마늘이 어른이라면 이른 봄에 심은 감자는 청소년쯤 되지 않을까.

장석남 시인의 시에서뚱뚱감자꽃이란 시어를 보고 감탄했던 일이 떠오른다. 꽃의 이미지를 뚱뚱하다고 그리다니. 그 시어를 본 후 감자꽃이 뚱뚱해 보였다. 그러다가 어느 책에서 실제 뚱뚱감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오해로 시어를 아름답게 해석했던 것이다. 나의 무지로 인해 시어를 의미 확대하여 해석한 시가 또 하나 있다. 오규원 시인의 때찔레라는 시어를떼찔레라 읽었다. 해당화를 이르는 때찔레를 떼로 핀 찔레로 읽었던 것이다. 첨가된 글자 하나가 찔레 그림을 생생하게 살려주는 것 같았다.물론, 시 전체를 봤을 땐 당연히 때찔레가 아름답다내가 자연에 대해 무지하고, 이해력이 어려 오해로 감동을 받았던 시어들. 나는 그 시어들을 떠올리며 설아는 것의 위험성을 생각했다.

 

저수지 둑 앞에서 경운기 한 대가 나를 추월한다. 경운기 짐칸 뒤에 야광 페인트가 신호등 모양으로 칠해져 있다. 빨강, 파랑, 노랑. 저렇게 신호등 불이 다 들어와 있으면 보행자나 차량 운전자는 어쩌란 말인가. 나는 혼자 키득키득 웃는다.

저수지 둑에 올라서 크게 숨을 들이켠다. 내게 푸른빛도 무서울 때가 있음을 알려준 저수지가 드넓다.

붕어 1, 2차 산란기는 진달래꽃 따라 남쪽부터 올라온다니까. 지난번 진달래꽃 피었을 때 붕어 많이 타작했었지. 산란기라 작은 놈도 잡으면 흰 정액을 쫙쫙 뿜더라니까.”

낚시꾼들 이야기를 들으며 산모퉁이 돌아, 직선으로 뻗은 저수지 본 제방에 올라선다. 높은 길. 제방의 높이가 사십여 미터는 될 것 같다. 쥐불을 놓아서인지 제방의 잔디는 이제 파릇파릇하고 쑥과 쇠뜨기 풀은 그에 비해 무성하다. 빽빽하게 난 쇠뜨기 풀들은 난쟁이 나라의 침엽수림 같다. 제방에서 골프공 톡톡 치며 다가오는 사내를 만난다. 저 아래 논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들이 사내를 본다면……, 고수이면 저러겠는가, 이제 막 골프에 재미 붙여, 아직 골프에 봄풀처럼 어려서 저러는 게지 하며 농부들이 이해해줄 것도 같다.

저수지에 가득 찬 물이 푸르게 술렁인다. 마라톤 출발 라인의 선수들처럼 호흡을 가다듬으며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저수지 제방 아래는 냇가와 도랑으로 이어진 수백만 평 논들이 펼쳐져 있다. 그 논들에게 젖을 물려주고 있는 저수지는 들판의 어미다. 곧 논으로 달려갈 생각에 저수지에 고인 물이 맘 설레는지 넘실넘실 푸른 춤을 춘다. 어미도 저리 아이들처럼 달떠 있는 것 보면 봄엔 다 어려지나 보다. 봄엔 다 소풍가고 싶어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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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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