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가는 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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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회

나비야, 나비야 하고 불러본다. 기다려도 대답이 없다. “나 요즘 바쁜 줄 알면서 왜 부르세요.” 나비 대신 내가 답해본다. 나 지금 소풍 간다고 자랑하려다가 그만둔다. 그래도 같은 나그네라고 잠시 말이나 들어주려는 듯, 나비가 꽃도 아닌 마늘밭 마늘 대에 앉는다. 예년에 비해 꽃 작황과 꿀의 당도는 어떤가 물어볼까 망설이고 있던 중, “신접은 차렸느냐?”라는 엉뚱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별싱거운 소리 다 듣는다는 듯 나비가 심드렁해져서 날아간다. 나비 얼굴이 작아 홍조를 띠었는지 안 띠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비에게 잘 가라고 빈손을 몇 번 흔들어준다.

소풍消風·逍風. 소풍이 뭐 별건가. 바람 쐬며 거닐거나, 바람처럼 거닐면 되는 것 아닌가.

새벽에 밥하려고 쌀을 펐다. 며칠 사이에 쌀벌레 수가 부쩍 늘었다. 손가락이 무뎌 쌀벌레만 잡히지 않았다. 쌀 몇 톨과 함께 쌀벌레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입에 긴 집게가 달린 쌀벌레가 쌀 톨 틈을 비집고 빠르게 기어 나왔다. 쌀벌레는 손가락을 대자 죽은 체했다. 목숨 지키려는 작은 생명체의 모습이 안쓰럽게 다가왔다. 너무 작아 손가락 끝으로도 잡을 수 없는 생명. 쌀벌레야, 너는 어쩌자고 흰 쌀에 살며 몸이 검은 것이냐? 쌀벌레 이십여 마리를 골라냈다. 나와 같이 쌀을 주식으로 삼는 식객들이 이렇게 많이 나와 동거를 하고 있었으니, 내가 만날 독상을 대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쌀벌레가 고마워지기도 했다.

멀리 김제평야에서 쌀을 보내준 농부 시인 김유석 형과 유기농 봉지쌀을 보내준 김민정 시인의 고마운 맘을 내 마음에 안친 새벽. 남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받기만 하는 나의 생활이, 쌀만 축내고 있는 쌀벌레 같은 내가 한없이 미워졌다. 반성 끝에, 앞으로 매일 저수지 길이라도 걸으며 운동하여 뱃살도 빼고 글도 열심히 쓰자고 맘을 다졌다.

 

길가에 핀 애기똥풀꽃을 보고 멈춰 선다. 꽃 대궁 꺾어 손등에 봄이라고 노란 글씨를 써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비 곳간에 꽃벌레까지 될 수는 없어 그만둔다. 길 양쪽으로 펼쳐진 봄의 들판 풍경은 나른할 정도로 평화롭다. 이랑이랑 고랑고랑 켜 진 밭들은 정갈하고 무논에 든 산의 빛은 사철나무나 대추나무 꽃처럼 아직 비린 연둣빛이다. 비닐하우스에서는 빛을 좋아하는 고추 모종과 고구마 순이 자라고 그 이웃 밭에는 그늘 좋아하는 삼이 푸르다. 삼포 그늘막

에서 아낙들의 웃음소리와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온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사람의 소리만 두런두런 들리는 삼포. 삼포는 들판의 스피커다.

길가에 느티나무 잔꽃들이 쌓여 발이 푹신하다. 나는 다시 그늘에 멈춰 서서 마늘밭에 귀를 기울인다. 겨울을 잘 나 의젓하게 푸른 봄 마늘밭에 아낙이 혼자 쪼그려 앉아 밭을 매고 있다. 드걱, 드걱, 드걱, , , . 호미 날이 흙에 박히는 소리 척! 그 소리가 가슴에 숨구멍 하나를 튼다. 나는 코가 아닌 가슴으로 흙냄새를 맡아본다.

마늘밭 아래 한우농장에서 개들이 짖는다. 처음엔 길가에 멈춰 선 나를 보고 짖더니 이제 저희들끼리 서로 맞대고 짖는다. 줄에 묶여 맞닿을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개 두 마리가 최선을 다해 으르렁으르렁 컹컹 짖는다. 꼬리 곧추세운 개들은 뿔 없는 머리로 허공에 뜸베질하고 뒷다리로 땅을 찬다. 서로 맞닿을 수 없다는 개들의 믿음 간곡하니, 줄이여 견뎌라. 저러다가 줄이 뚝, 끊어지면 개들이 얼마나 당황할까. 개들은 민망해하며 조금 전 자신들의 용맹을, 하품 끝내고 입 닫듯 빠르게 접을 것이다. 그런 다음 애먼 줄을 물어뜯으리라. 줄을 원망하리라. 줄이여 견뎌라. 개들의 허세도 이 봄엔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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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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