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기帥字旗를 아시나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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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회

인터넷으로 수자기를 검색하다가 2008424, 137주년 광성제 날 쌍충비 앞에 수자기를 게양한 기사를 볼 수 있었다. 반갑고 고마웠다. 행사는 함종 어씨와 강화군이 주관했다. 지난번 국립고궁박물관을 다녀와서 수자기를 강화도에 전시할 계획이 없다고 해서 섭섭하다고 강화문화원 지인에게 말도 했었는데……. 수자기를 게양해 조선 병사들의 영혼을 위로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수자기가 진품이 아니었던 게 조금 섭섭했지만 국립고궁박물관의 고증을 받아 제작했다니 그래도 다행이었다. 기사는, 수자기를 장기 대여하여 와 강화 역사박물관이 완공되는 2009년부터 강화도에 상시 전시할 거라고도 전하고 있었다.

손돌목돈대를 나와 용머리처럼 해협으로 뻗은 용두돈대로 발길을 옮겼다. 돈대 입구는 보수 중이라는 안내판을 단, 임시로 설치된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돈대 양옆 해안가 절벽에서 일꾼들이 잡목을 베어내고 있었다. 돈대 옆으로 내려가는 논길을 택해 제방에 올라서서 보았다.

 

2005년 가을 염하를 통과하는 거북선을 보았던 일이 떠올랐다. 광복 6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서울시가 한강 이촌 나루터에 전시하고 있던 거북선을 한산대첩의 고장인 경남 통영시에 기증했고 그 거북선이 염하를 통과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마침 동네 친한 형이 거북선 보러 갈 생각 없냐고 전화를 해와 길을 나섰다. 분단 후 끊겼던 강화 북단 비무장지대 옛 뱃길을 뚫고 내려오는 거북선을 만나기 위해 해안선도로를 달렸다. 유도가 보이는 연미정 근처에서 거북선을 기다렸다. 예정 시간을 넘어 두 시간을 더 기다려도 거북선은 나타나지 았다. 군청에 알아보니 수심이 얕은 곳에서 배가 걸려 시간이 지체되어 비무장지대 통과 문제로 다음 날이나 온다고 했다.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으나 마음은 들떠 있었다. 한일불평등늑약을 맺은 강화를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통과한다는 사실이 의미롭게 다가왔다. 또 무게 180, 전장 34미터, 10미터, 높이 6.3미터, 제작비 22억 원을 들였다는 거북선이 강화 갑곶진, 지금은 통행이 금지되어 있고 수떾물만 건 오는 구 다리 밑을 잘 통과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튿날 자라 머리를 닮았다는 오두돈대 에서 거북선을 만났다. 거북선은 수군조련도 중 삼도수군통제사에서처럼 수자기를 달고 있지는 았다. 180톤이란 크기에 비해 거북선은 작게 보였다. 광성보 으로 내달리던 거북선이 멈추고 닻을 내렸다. 선원들이 바빠지고 해안선을 따라 거북선을 쫓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동네 형이 망원경으로 한참 살피더니, 거북선은 괜찮은데 앞에서 유도하던 선외기 한 대의 추진날개가 물 밑 폐그물에 걸려서 그렇다고 했다. 잠수부들이 물속을 들락거리기를 두 시간 정도 지나서야 거북선이 닻을 올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성보 앞을 지날 때는 이미 석양이 지고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어두워진 수면 위를 달리는 거북선은 무서웠다. 거북선은 배가 아니라 실재하는 거대한 거북이로 다가왔다. 그것은 귀면鬼面의 형상 같기도 했다. 배가 아닌 동물이라는 이물성과 의외성이 주는 위압감은 섬뜩했다.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느꼈을 공포심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치른 대원군이 거북선을 만들라고 해 만들었으나 물에 뜨지 았다던 기록을 본 일이 떠올랐다.

 

어둠이 내린 광성보를 나오며 E. H. 카의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무슨 깃발을 달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시대는 무슨 깃발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했다.

아파트 수 평을 위해 한평생을 걸고 살아가고 또는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강남 8학군에 편입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깃발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강화도 관광 순회 버스를 시간 반 기다리며 어둠 속에 깃발 하나를 호명해놓고 묻고 또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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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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