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여 제발 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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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바닷가에 매어놓은 그물을 털러 가다가 아랫집 동생을 만났다. 바람이 불고 비가 와서 걱정이라며 논에 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물이 빠져 그물이 다 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시간도 보낼 겸 동생 차에 올랐다. 농로로 접어들자 차는 속도를 줄였다. 황금들판이 비바람에 무겁게 일렁였다. 새를 쫓는 공갈 대포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농사들은 다 잘되었는데 벼가 쓰러져 걱정이라며 아랫집 동생이 담배를 물었다. 어떤 집 논은 벼들이 장판지처럼 바닥에 쫙 깔려 있었다. 쯔쯔, 혀 차는 소리로 짧게 마음을 표현한 동생이 차를 세웠다. “이삭 거름을 적게 뿌렸어야 했는데…… 내년에는 거름을 주지 말든지 해야지 원…….” 말을 흐리며 차에서 내려 논을 살피는 젊은 농사꾼의 뒷모습이 마냥 쓸쓸해 보였다. 차를 다시 몰며 벼를 쓰러뜨리지 으려면 내년엔 이삭 거름을 좀 적게 줘야지 결심하면서도 그게 잘되지 않는 게 농부 마음이라고 했다. 비바람이 불지, 안 불지 알 수 없고 거름에 따라 소득이 확 차이가 나기 때문에 거름 줄 때면 마음이 흔들린다고 했다. 낟알이 많이 열려 쓰러진 벼들은 새 떼들이 까먹어 이삭이 적게 나온 벼만도 못한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나 고기가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가져올 고기와 살려줄 고기를 선별하며 농사짓는 동생에게 죄지은 것처럼 미안한 맘이 들었다. 그물에 걸린 세숫대야만 한 해파리 백여 마리를 털어내고 파도에 풀린 그물 끈을 말뚝에 붙잡아 맸다. 물손(이곳 사람들은 쳐놓은 그물에서 물고기를 털고 그물 손질하는 일을 물손본다고 한다. 물손 본다는 말의 내력은 잘 모르겠으나 그 어감이 참 좋다) 다 봤는데 망둥이, 전어, 장대, 부세가 먹을 만큼 들었다고 먹을 거냐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고기는 잘 얼려놓았다가 추석에 고향 갈 때 가져가고 빈대떡이나 먹으러 오라고 했다.

풀 깎는 예초기 한 대에 얼마나 하지? 왜요, 사려고요. 아니, 고향 사촌형이 가지고 있긴 한데 아버지 산소 벌초도 해주고 하니까 미안해서, 예초기가 비싸면 날이라도 좋은 것 사다 드릴까 해서. 점점 세차지는 비바람을 걱정하며 티브이 앞에서 태풍 진로 뉴스를 기다리는 아랫집 동생을 보자 사촌형의 말이 떠올랐다.

남의 논농사도 짓고 과수원도 하고 개소주 내리는 기계를 사 호박이나 과일을 내려 팔기도 하니까 그냥 애들 가르치며 간신히 먹고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는데 농가 부채가 걱정이여.”

형님, 고향엔 바다 없잖아요. 그러니까 고향 갈 때, 물고기 많이 잡아가서 그 사촌형님한테 갖다가 드려요. 낙지도 잡아 가고. 내가 차로 형님 차 타는 데까지 짐 실어다 주고 아이스박스하고 얼음 팩도 빌려줄 테니까. 그리고 망둥이 말릴 때 식 약하게 탄 물에 살짝 절였다가 말리면 파리가 안 덤빈다니까 한번 해봐요.”

그게 파리의 사랑 아닐까? 산성에 알카리성인 알 녹을까봐 알 슬지 는. 마치 농사꾼이 농작물을 걱정하는 것처럼.”

내 말에 잠시 시름을 접고 젊은 농부가 해맑게 웃는다.

태풍이여, 제발 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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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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