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회
어느 길가에서나 쉽게 눈에 띄던 민들레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과장하면 민들레꽃보다 칼 들고 쭈그려 앉은 나물꾼들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요즘 들어 민들레 채취꾼들이 부쩍 늘어났다. 또 티브이에서 민들레가 어디에 좋고 어디에 직방이라고 떠들었나보다.
산책길에 호기심이 발동해 길가나 밭두렁에 삼삼오오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보았다. 곡식도 아닌 잡풀들까지 가꿔주는 부지런한 농부들인가 아니면 꽃 관찰하는 들꽃사랑 동호회 무슨 님 무슨 님들인가. 쑥은 이미 세었고, 거지반 다 민들레를 뜯거나 캐고 있었다.
“아시겠지만 좀 솎아서 뜯어 가세요.”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흔하디흔한 민들레 뭐, 씨 마르겠어요. 풀 뜯어주니까 오히려 우리한테 고맙다는 말을 해야죠.”
민들레꽃 줄어드는 게 걱정되어 한마디 던진 말에 대답이 사뭇 달랐다. 몸이 아파 약으로 쓴다든가 입맛 돋울 나물로 적당량 뜯는다고 하면 그를 탓할 사람 누가 있겠는가. 거기는 작년에 농약 준 자리라고 알려주기도 하고 어디로 가면 더 많다고 가르쳐주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욕심이다. 사람이 들어가도 남을 것 같은 검은 비닐봉지 아가리 쫙 벌려놓고 주위를 싹쓸이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 땅도 아닌데 괜히 부아가 난다. 잘코사니, 저리 욕심이 많으니까 병을 얻었지, 저리 뚱뚱하지 하는 나쁜 마음마저 일어나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은 객지 사람들처럼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언제든지 원하면 들판에서 구할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자기가 살아가야 할 땅이라 내년을 기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네라는 개념을 좀 더 넓혀보면 우리나라 땅 전체가 동네가 될 수도 있고 누구나 동네 사람일 텐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다 하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였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을까 싶었다…… 지난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다…… 바람에 불려가는 씨앗은 물기의 끝, 무게의 끝이었다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이었다…… 만남과 헤어짐의 속력은 같다 씨앗 다 날려 보낸 가을 민들레가 압정처럼 박혀 있다.’
이문재 시인의 「민들레 압정」이란 시를 지면 관계상—시인에게는 너무 무례하지만—요약하여 옮겨보았다. 위의 시는 민들레를 통해 이별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그린 절창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생명력 강하고 친근한 민들레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 어찌 부끄러워 봄을 기다릴 수 있을까. 노란 민들레 흰 민들레, 봄을 부르는 예쁜 인종으로 다시 촘촘 피어나길 바라며 두 손 모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