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에서 길을 생각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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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절 중 최고로 오래되었다는 전등사. 전등사 대웅보전에는 전설이 전해진다. 추녀 밑에서 지붕을 받들고 있는 나부상에 대한 전설이다. 절을 짓던 도편수는 절 아랫마을 술집아낙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절을 다 지어갈 무렵 그 아낙이 목수의 물건과 돈을 가지고 도망가버렸다. 그래서 목수는 그 아낙을 원망하며 그 여자를 나체 형상으로 만들어 무거운 추녀를 들고 있게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술집 아낙이 아니고 도편수가 사랑한 한 여인이 있었는데 도편수가 절 짓는 데 전념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나 도망가자 복수심으로 나부상을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저것이 그것이여.”

대웅보전 뒤쪽에서 나부상을 보고 있을 때였다. 정상적인 부부가 아닌 것 같은 중년의 남녀가 잡고 있던 손을 풀어 손가락으로 나부상을 가리키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들의 선글라스는 유독 크고 색이 짙었다.

목수여, 나를 사랑해주었던 사람이여/이제 나의 죄를 용서해주게나.’

몇 해 전 신춘문예 심사를 봤었다. 예심에서 내가 뽑은 작품 중에 전등사 나부상을 노래한 시가 있었다. 시를 응모한 사람은 포항 사람이었다. 시는 나부상이 추녀 밑에서 내려와 눈 내린 절 길을 산책하며 목수에게 용서를 바라는, 회한이 담긴 노래였던 것 같다. 상상력과 시의 구조가 매우 탄탄한 시였다. 당선작은 되지 못했으나 그 시는 내게 커다란 자극이 되었었다. 나부상을 지상으로 내려오게 해 절을 산책하게 할 수 있는 상상력이 내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를 본 이후 전등사에 들를 때마다 나부상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네 귀퉁이 처마 밑에 있는 나부상들은 표정과 모습이 다 달랐다. 동쪽(여기서 방향은 정족산성 문의 위치를 기준으로 삼아 말함)에 있는 나부상은 오른손으로 처마를 들고 있고 왼손으로 무릎을 짚고 있다. 남쪽에 있는 나부상은 이와 반대로 왼손으로 처마를 받치고 있고 오른손으로 무릎을 짚고 있다. 그리고 서쪽과 북쪽에 있는 나부상은 양손으로 처마를 받쳐 들고 있다.얼핏 보면 두 나부상은 외형이 똑같은 것 같으나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다. 서쪽에 있는 나부상은 몸통이 쪼개져 확실하지는 않으나 그냥 맨몸인 것 같다.

그러나 북쪽에 있는 나부상은 가슴께에 붉은 줄을 둘렀고 사타구니에서 옅은 남색의 천 같은 게 올라와 이 줄에 매어져 있다. 언제부턴가 이 남색의 천 같은 게 여성의 생식기로 보였다. 여성의 겉생식기를 과장되게 그려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생식기가 아래로 수축하여 정상이 되지 못하게 줄에 붙잡아 매놓은 것같이 보였다.

북쪽에 있는 나부상을 보며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술집 아낙 또는 목수가 사랑한 여인이 도망간 길이 북쪽이 아닐까. 강화읍이나 개성 쪽 방향으로 난 길 말이다. 그 여인이 도망간 방향에 목수가 더 큰 원망의 마음을 올려놓은 것은 아닐까. 또 불가에서 따르는 방향을 생각해보면 동···북 순으로 일을 진행해오며 목수의 노여움도 점점 커져 마지막 북쪽에 다다랐을 때 여인의 성기까지 그려놓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란 책을 쓴 허균은 사찰 100 100에서 여인상은 나부상이 아니고 나찰상이라고 한다. 그는 증거로 북서쪽에 있는 인물상의 파란 눈동자를 든다. 파란 눈동자는 불교의 다른 신중 계통의 인물상에서는 볼 수 없는 나찰羅刹만의 특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법당 불사에 참여했던 목수가 주막을 드나들며 여자를 사귈 수가 있겠냐고 한다. 설령 그런 일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개인의 복수심을 담은 여인의 조각상을 신성한 불전 건물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냐는 것이다.

그는 법주사 팔상전 추녀 밑의 나찰상인 난쟁이상과의 유사점을 들기도 하고, 일본과 동인도의 나찰상을 예로 들어 보이며 여인상은 나부상이 아닌 외호신 중의 하나인 나찰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허균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 생각을 아무 검증도 없이 글로 쓸 뻔했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앎의 길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나는 나부상 아니 나찰상을 통해 깨우치게 된 것이다.

 

대웅보전 앞에서 지인을 만나 요사채에서 점심 공양을 했다. 음식을 먹으면서아까우니까 먹어치워야지란 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말은 언뜻 듣기에는 맞는 말 같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단지, 음식이 아까워서 먹는다는 좀 야박한 말로도 들린다. 음식물이 고맙고 소중해 먹어야 한다는 느낌보다 경제적 손익에 더 관심이 있는 말로 들린다. 물론 위의 두 뜻을 다 담은 중의적 말이겠지만. 절에서의 식사는 조용해서 좋다. 음식물도 살아 소리쳐본 적이 없는 식물성들이다. 음식을 먹으며 떠들면 음식에게 미안한 맘이 든다. 음식들이 내 입까지 오게 된 길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지인과 헤어졌다. 사고지 터가 있는 길을 잡았다. 길 왼쪽 고려 가궐지 터에서는, 시간의 길을 역추적하는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서문과 북문으로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멈춰 섰다.

수목장 지낸 은사님 나무에 가보려고 하는 참이었다. 은사님 나무 옆 소사나무에서 딱새가 나무줄기를 쪼고 있었다. 은사님 책 제목처럼가슴이 붉은 딱새였다.

수목장. 식물을 먹고사는 동물로 살다가 식물로 돌아감. 큰 틀에서 보면 동물과 식물은 한 몸이다. 움직이며 살다가 멈춰 섬. 뜨거운 몸이었다가 찬 몸이 됨. 전후로 길을 오가다가 상하로만 길을 감.

나는 은사님 나무를 보며, 길도 윤회를 하고 세상 만물이 다 윤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길, 숨길, 마음 길도 못 다스리는 내가 무슨, 길이 어쩌구저쩌구 잡념에 들었던 것이 부끄러워져 황망히 전등사를 나섰다. 부끄러운 마음에게도 길은 길을 내줬다. 당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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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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