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에서 길을 생각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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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회

달맞이고개에 올라보면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이 내려다보이고 그 앞으로 염하강이 흐른다. 병자호란 때 강화성을 지키다가 성이 함락되자 김상용(척화파, 좌의정 김상헌의 형)과 함께 남문에서 자폭했다는 김익겸. 김익겸이 죽자 부인은 자결하려고 했으나 배 속에 유복자가 있어 차마 생명을 끊지 못하고 피란을 가던 중, 구운몽을 쓴 서포 김만중을 배에서 낳았다. 김만중은 피란 중에 염하강에서 태어나 아호가 선생船生이라고 한다. 김만중은 말년에 노도에 유배되어 생을 마감했으니 그의 인생길은 물길에서 시작되고 물길에 갇혀 끝난 셈이다.

달맞이고개를 지나 북문 쪽으로 오르면 강화읍 방향으로 드넓은 땅들이 보인다. 남쪽으로 마니산, 북쪽으로 진강산·덕정산·혈구산·고려산 봉우리들이 보이는데 이 산맥들은 한강 하구를 물 밑으로 건너 송악산에 닿아 마식령산맥을 이룬다고 한다. 정족산성 북문에 이르기 전 봉우리에 오르면 멀리 강화읍 갑곶진과 그 건너 문수산까지 보인다. 갑곶진 앞 염하강에는 강화 구대교(1969년 개통)가 있다. 이 구대교와 연결된 길을 사이에 두고 천주교 성지와 역사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천주교 성지에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협력한 천주교 신자 이름이, 역사박물관에는 프랑스군과 격전을 치른 장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종교와 역사의 중간에서 길은 슬프다.

성을 따라 북문, 서문, 남문을 지나 동문까지는 이삼 킬로미터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사방 풍광이 수려한 길이다.

 

양지洋紙로 피를 닦아버린 것이 거의 도로에 빈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프랑스군이 패하여 강화읍으로 도주한 길 풍경을 묘사한 양헌수 장군 병인일기의 기록이다. 정족산성에서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오백여 명의 조선군이 프랑스군을 크게 물리친 다음 날의 일이었다.

정족산성 성벽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전등사를 향해 걷다가 우측 양헌수 장군 승전비 앞에 섰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비각 앞에 사람들이 쌓아놓은 작은 돌탑들이 수북하다. 돌탑에 쌓인 마음들을 헤아려보다 종교의 길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병인양요의 원인이 되었던 프랑스 신부 학살사건만 보아도 종교의 길은 물리적 거리를 넘어서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 조선까지 와 순교당한 프랑스 신부들도 그렇고, 진나라에서 고구려에 와 381(고구려 소수림왕 11)‘진종사’, 지금의 전등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을 생각해도 그렇다.

 

성문까지 비탈길을 올라오며 가빠진 숨을 돌리란 배려일까. 양헌수 장군 승전 기념비를 지나면서 길은 내리막이다. 길가에 줄이 매어져 있고 그 줄에 연등들이 매달려 있다. 십자가 불빛이 수직 지향적인 것에 비해 연등들은 수평 지향적이다. 연등들은 수평으로 피어난다. 수직 성향의 불빛마저 수평으로 줄에 매단 맘엔 왠지 깊은 뜻이 있을 것 같다.

전등사에서 만나는 오래된 소나무들은 다 상처가 있다. 일제강점기, 전쟁에 쓰려고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라고 한다. 이 땅의 식물들도 혹독한 침탈을 받은 증표다. 남문과 동문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곳에 오백여 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은행나무 썩은 속을 채운 시멘트를 본다. 나무들은 껍질 부분만 살아 있고, 속은 세포들이 죽은 거나 마찬가지여서 나무를 지탱하는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초지대교를 건너오면서 보는 전등사, 정족산은 명필이 쓴 뫼산자[]처럼 잘생겼다. 예부터 뫼산 자로 생긴 산은 명당이라고 했고 대부분 절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정족산鼎足山은 산 모양이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초지대교 위나 전등사 대웅전 앞 큰 느티나무 아래서 보면 잘 보인다)처럼 산봉우리 세 개가 다리 모양으로 우뚝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마솥이 엎어진 모양 안에 절을 세운 의미는 무엇일까. 지구라는 가마솥에 불심을 지피라는 뜻은 아니었을는지. 지구가 자전하여 밤이 되면 정족산 솥 다리가 바로 서는 것 아닌가. 또 지구를 떠나 무한공간에서 본다면 이 솥 다리는 낮에도 바로 서 있는 것이 된다. ‘항시 불심을 지피기만 하면 된다. 자비로 가득 찬 세상을 열 수 있다는 큰 뜻을 품고 전등사가 세워진 것은 아닐까.

 

전등사 입구까지 연결된 연등 줄은 전등사란 사찰명이 붙어 있는 대조루對潮樓가 출발지였다. 대조루라는 누각의 이름은 멀리 염하강 쪽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조수를 대할 수 있는 곳이라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누각은 대개 일주문과 중심 법당을 잇는 일직선 상에 설치하는 사례가 많아 다락식인 경우 누각 밑을 통과하면 법당 앞마당에 진입하게 된다고 한다.

나는 대조루 기둥에 붙은 주련을 읽었다. 한문 실력이 바닥이라 주련 아래 번역해놓은 시구를 다시 읽었다.

온종일 바쁜 일 없이 한가로이/향 사르며 일생 보내리라/산하는 천안天眼속에 있고/세계는 그대로가 법신法身일세/새소리 듣고 자성自性자리 밝히고/꽃 보고 색과 공을 깨치네

오른쪽부터 왼쪽 기둥으로 자리 옮기며 주련을 읽고 계단을 통해 법당 앞마당에 올랐다. 누각 안에 들어가보려고 마당과 연결된 작은 다리를 지나려는데, 누각 안쪽 기둥에도 주련이 붙어 있었다. 눈이 나빠 시구절이 보이지 않아 다음에 보기로 하고 누각 안으로 들어갔다. 불교서적과 기념품 판매대가 있고 대조루를 노래한 목은 이색의 시와 편액들이 걸려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보면 대조루 아래에서보다 염하강이 더 잘 보일까 확인하려다가 관리인에게 극성스럽게 비칠까 싶어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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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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