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에서 길을 생각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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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최대한 직선을 지향한다. 그러나 굽을 수밖에 없는 것이 길의 운명이다. 가급적 평지를 택하나 경사를 품을 수밖에 없는 것도 길의 운명이다. 전등사 동문東門을 향해 오르는 길은 완만하게 몸을 틀고 그 굽이 따라 물도랑도 휘었다.

누가 봄볕에 이리 잘 마른 길을 널어놓았을까. 가랑잎이 바스락거린다. 바람이 내는 소리의 길은 생성과 동시에 소멸한다. 길가에 멈춰 새싹 돋은 쪽싸리나무를 들여다본다. 잎의 길을 출발하는 쪽싸리나무 연둣빛이 흔들린다. 바람이 읽고 있는 연둣빛을 보며, 눈은 여림과 옅음이 선사하는 평화로움에 젖는다. 새 한 마리가 몸에서 떼어낸 그림자를 끌고 날아간다. 새 그림자는 소리도 내지 않고 딱딱한 나무를 통과한다. 한 옥타브 올라간 봄의 새소리에는 사설이 없다. 전 장르가 노래이고 연시戀詩. 새소리의 파장은 직선으로 날아오지만 곡선으로 들리기도 한다. 몸집이 작고 비행 속도가 늦은 겁 많은 새들은 직선 길을 버리고 곡선 길로 난다. 스스로 비행길을 예측불허로 흩트려놓으며 적의 공격에 대비한다.

길을 오르는 우측 산 쪽에는 사람들이 줄 맞춰 식목한 리기다소나무가 서 있고 좌측 낭떠러지에는 바람과 태양이 키워온 적송들이 서 있다. 적송들은 굽었고 리기다소나무는 곧다. 나는 곧음과 굽음 사이에 난 길을 오르고 나무들은 길 밖에 서 있다. 늘 식물들은 멈춰 있고 동물들은 움직인다. 천동설을 믿는 동물들과 달리 식물들은 일찍이 지동설을 간파했던 게 아닐까. 식물들은 멈춰 있어도 지구의 자전 속도에 따라 하루분의 어둠과 빛의 길을 자전하며 갈 수 있다는 것과, 일 년이면 공전하며 태양을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하고 묵묵히 한자리에 서서 움직임의 궤도를 몸속 나이테로 그려왔던 것 같다. 식물들은 움직이는 지구를 따라 움직이려고 멈춰 있고, 지구의 움직임을 못 느끼는 동물들은 움직여야만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들의 움직임은 자기적이고 비순응적이다. 동물들 움직임에는 욕망이 수반되어 발자국이 남고 소리가 난다.

 

언덕길 중턱부터 좌측에 아카시나무 가로수가 나타난다. 아카시나무 껍질이 물기를 오래 머금고 있어서인지 나무줄기 높이까지 이끼들이 자라 있다. 나무를 만나면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지 않고 나무를 타고 휘어진 길을 솟아오른다. 이때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물은 뿌리에서 나무 밑동을 지나며,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상으로 다리를 건너고 줄기에서 가지로 흐르며 또 한 번 다리를 건넌다. 종내는 가지에서 꽃과 잎으로 이어지는 작은 다리를 건넌다. 그렇게 흐르는 물길이 숲에는 빼곡히 서 있다. 소나무 숲의 물길은 겨울에도 끊기지 않아 푸른 잎으로 바람에 물결처럼 흔들려도 본다. 파도 소리를 내기도 한다.

아카시나무 가로수가 시작된 지점에서 길의 우측인 산 쪽은 리기다소나무 숲이 끝나고 쇠사슬나무와 갈참나무 숲이 이어진다. 이 나무들은 곧고 근육질이어서 마치 암놈이 없을 것 같다. 졸참나무 낙엽이 다급하게 바스락거린다. 바스락 소리가 휘모리장단으로 가파르게 치닫는다. 꿩이 날아오른다. 꿩의 활주로는 꿩을 하나도 돕지 않는다. 꿩에게 제 가속도를 측정해볼 기회를 줄 뿐이다. 꿩은 다리의 길을 접고 날개의 길을 편다. 딱딱하길 바라던 길에서 허탕을 치는 길로 길이 이어진다.

꿩이 내달은 길은 고라니 길이 될 수 있고 고라니 길은 사람 길이 될 수 있다. 사람이 걸어 다니던 길은 큰 차도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막 꿩이 낸 길은 길의 새싹인가. 길들은 진화와 퇴화를 반복하며 서로 만난다. 길끼리 만나지 않는 길은 존재할 수 없다. 길 중에, []인 길은 없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내가 걷고 있는 차도가 걸어서만 오갈 수 있는 길을 만난다. 가파른 계단 길이다. 무릎 관절을 닮은 계단 길에서는, 앞발과 뒷발이 서로 체중을 넘길 때 힘에 절도가 붙는다.

가로수 대신 집 몇 채가 나타난다. ··. 식으로 의식을 치러내는 사람들이 사는 곳. 식당에서 음식 냄새가 흘러나온다. 사람들 음식에서는 냄새가 난다. 음식 냄새의 길은 구멍인가. 위장에서 반응이 온다. 동문 바로 앞 우측에 작은 주차장이 나타난다. 그 주차장 주위에 몇 그루 느티나무가 있다. 절에는 구시(나무 밥통), 기둥, 불상 등 싸리나무로 만들었다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박상진의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는 그것들이 싸리나무가 아니라 느티나무라고 추측한다. 옛날에 느티나무로 다양한 절 용품을 만들었듯, 임시 사리 보관함도 느티나무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느티나무를 사리나무라고 부르다가 발음이 비슷한 싸리나무로 변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가 절에서 싸리나무라 불리는 것들을 현미경으로 살펴본 결과 대부분 느티나무 세포였다고 한다. 전해져 내려오던 이름도 이름의 길에서 탈선을 하는가.

 

단군의 세 아들(부소, 부우, 부여)이 쌓았다는 정족산성鼎足山城. 전등사에 들어가려면 이 산성을 통과해야 한다. 산성의 동문을 통과하려다가 물러서서 성벽 바깥에서 성벽을 본다. 수많은 돌로 쌓인 성벽. 성벽은 가장 치열한 길이다. 길을 끊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의 경계다. 길과 길이 아님의 경계이고 공격과 방어의 경계다. 부딪힘이다. 목숨을 걸거나 바쳐야 길을 끊든, 잇든, 지키든, 허물든 할 수 있는 곳이다. 성벽, 사적인 담이 아닌 공적인 담. 담 중에 목숨 비린내가 가장 짙게 배어 있는 담. 성벽은 길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길이고 길을 인정하려는 길이어서 늘 긴장감이 팽팽한 길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 길도 세월의 공격엔 어쩔 수 없는지, 허물어져 새로 개축한 흔적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동문을 통과하면 포장도로가 끊기고 흙길이 시작된다. 우리나라 도처에서 열세에 놓인 흙길. 지금 정족산성이 지키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흙길인가보다. 흙길과 콘크리트길의 경계에 정족산성 성벽이 있다.

성 안에서 동문을 바라보면 좌측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달맞이고개 쪽으로 오르는 길이다. 가파르나 산이 높지 않아 그리 힘들지 않은 길이다. 달맞이고개. 부처님은 음력 48일 태어났고 음력 28일 출가하여 음력 128일 깨달았다. 음력 8일은 반달이 뜨는 날이다. 달의 힘에 영향을 받는 물때를 따져보면 조금날이다. 조금은 물이 가장 적게 들어오고 적게 나가는 날이다. 조금은 물이 늘고 주는 경계의 날이다. 달의 입장에서 보면 반달은 커지든 작아지든 출발의 날이다. 새로운 길을 떠나는 날인 것이다. 그날 부처님은 태어나고 출가하고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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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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