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성찰과 사랑에 관한 은유를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균형 있게 풀어내는 신예 이승주의 『리스너』가 출간되었다. 2017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간결한 문체와 단숨에 읽게 하는 속도감, 뚜렷한 주제 의식”을 가졌다는 평과 함께 역량을 인정받으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등단작 「설계자들」을 비롯한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은 다양한 예술계 직업군에 속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관계 속에서 오는 갈등, 사랑과 이별들에서 만나는 감정 등 자칫 흔할 수 있는 이야기는 건축물, 음악, 예술작품 등에 맞물려 새롭게 그려진다. 즉 작가만의 틀 속에서 익숙한 이야기를 낯설게 하는, “이야기와 공감을 축조하는 능력”(김숨)으로 이승주식 모호함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간결한 문체, 속도감 있는 문장력, 명확한 주제 의식……
균형 잡힌 이야기로 문단이 주목하는 이승주의 첫 소설집!
여덟 개의 단편의 서사는 사랑과 우정 혹은 사랑과 이별, 결혼과 이혼 사이에 놓인 모호한 관계 속에서 출발한다. 그중에는 동성간의 사랑(「층과 층 사이」)이나 친족간의 사랑(「슬로 슬로」), 삼각관계(「리스너」 「건축 공간에 미치는 빛과 중력의 영향」), 이혼 후 동거(「공주」)와 같은,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관계도 포함되어 있다. 외부와의 갈등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멈추지 못하는, 혹은 멈추었으나 관계를 지속해가는 인물들이 그려내는 모호한 감정은 그들의 다양한 직업(출판 편집자, 전시 기획자, 광고 기획자, 그래픽 디자이너, 음반 디자이너, 녹음 엔지니어 등 문화·예술 직업군)과 맞물려 한층 더 선명해진다.
이 감정들은 “느슨하게 이어지면서 소설집 전체로는 ‘에디터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서사적 공간과 배경을 형성”(정홍수 문학평론가)한다. 여기서 ‘에디터’라는 단어는 이야기를 설계하고 재배치하는 편집자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자유롭고 개성적인 공간에서 화자의 개인적 성찰을 풀어놓는 자기언급적 측면의 뜻도 담고 있다. 건축 관련 직군의 주인공은 구조물에 빗대어 마음을 투영하고(「층과 층 사이」 「건축 공간에 미치는 빛과 중력의 영향」 「설계자들」), 음악 관련 직군의 화자는 엘피판이나 카세트테이프, 오디오 장치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성찰한다(「리스너」 「공주」). 작가는 어정쩡하고 모호해 보일 수 있는 관계와 그 안의 감정들을 “강렬하다기보다 믿음직스럽”(백지은 문학평론가)고 유연하게 설계한다.
이렇게 이승주는 작품 속에서 이별을 강요하지도, 갈등이 낳은 감정을 쓸모없는 것으로 단정짓지도, 타인과 자신의 마음을 속단하지 않으며 그저 현재 감정을 모호함의 세계로 밀어 넣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우리가 겪는 고통의 기억 대부분이 인간관계 속에서 비롯된 것임을 각인시키는 서서라는 점은, 상처받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위안이 될 수도 또는 필요한 이유도 될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 화자가 세워놓은 세계 속에서 보편적인 사랑과 사유를 담고 있는 이승주식 이야기가 단연코 유독 소설 바깥에서 빛나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이승주의 소설에서 ‘건축’은 인간사를 비추는 은유의 자리에 상징적으로 머물러 있기보다는, 그때그때의 구체적인 맥락을 타고 공간과 장소, 구조의 이야기로 묽게 풀어지면서 살아가는 일에 대한 환유가 된다. 그런 만큼 ‘건축’이 맥락화하는 의미는 인물들의 개별 정황 안에서 제한적이고 잠정적으로 조언과 참조의 자리를 생성하는데, 이는 이승주의 소설을 다시 한 번 좋은 의미의 모호함의 세계로 열어놓는 몫을 하는 것 같다.
―정홍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