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목격한 이후 17년!
다들 잊으라 하지만 과거가 아닌 여전히 현재이다
유괴를 당했다가 살아 돌아온 아이, 아니 정확하게는 둘이 유괴당했다가 혼자 살아남은 아이 지희에게는 늘 두 가지의 시선이 따라다닌다. 하나는 동정이 가득 담긴, 피해자로서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배신자라는 생존자/목격자로서의 시선이다. 지희에게는 둘다 공포를 일깨울 뿐이나, 이런 밖으로부터의 두 가지 시선보다 더 날카롭고 아픈 시선이 있었으니 그건 지희 스스로가 자신을 대하는 시선, 바로 죄책감이었다.
미성과 함께 유괴당한 후 혼자만 풀려난 지희는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이도형을 지목한다. 하지만 이도형의 확실한 알리바이로 증언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지희는 범인의 얼굴을 떠올리려 끊임없이 몽타주를 그린다. 또 다른 인물 장호성의 죽음으로 미제였던 유괴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지희는 수사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고, 결국 장호성이 살던 동네를 찾아가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 이후 지희와 이도형 사이의 진실을 둘러싼 공방은 이어지고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도형은 지희에게 진실을 밝히며 이번엔 지희가 자신을 살려줄 차례라고 말한다.
“그거 아니? 네가 지금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거. 기억이 안 난다며. 그럼 그냥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면 안 되는 거냐? 사방을 들쑤시며 심란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싶은 거야?” (116쪽)
주위의 계속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희는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 17년 전의 진실 찾기를 멈추지 않고, 사건 당시를 목격했던 친구 규연과 함께 길고 지루한 싸움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강요된 불안에 굴복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알게 될 때, 사건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 이를 때, 이를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 때, 자신을 옭아매고 괴롭히는 그 사건으로부터 도리어 풀려날 수 있다는 기대다.
―김건형(문학평론가)
“폭력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작가는 섣불리 해피엔딩을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억지로 상처를 지우려 하는 대신 그것을 마주하는 길을 택한 사람들의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폭력과 맞선 사람들의 승리가 반드시 보장되지는 않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내고 스스로 설 힘을 얻게 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산을 오르고 골짜기를 지나고 부서진 미로의 잔해를 밟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길 곳곳에 뿌려진 작은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은 아이』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작가의 말
폭력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억지로 상처를 지우려 하는 대신 그것을 마주하는 길을 택한 사람들의 용기에 대해서.
이 이야기는 그와 같은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이야기의 끝에서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자신만의 무기를 찾아내기를 바랐다. 보다 단단하고 씩씩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고통에 맞서면 누구나 강해지고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된다고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더 큰 고통을 떠안기도 하니까. 모든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는 폭력과 맞선 사람들의 승리가 반드시 보장되지는 않는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그러니 마침내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내고 스스로 설 힘을 얻게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판타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더 살 만한 세상을 꿈꾸는 이의 작은 용기를 믿고 싶다. 불공평한 싸움에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좌절로 끝나지 않기를 응원한다. 그와 같은 믿음과 응원이 계속된다면 우리가 원하는 결말이 그저 꿈같은 이야기는 아닐지 모른다고, 희망적인 말을 다소 무책임하게 던져보고 싶다. 어쩌면 판타지와 같은 일들이 점점 더 많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표4
사실을 증명하라는 요구는 때로 장해물이 된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이 혹 거짓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고,
그러는 사이 진실을 주장할 용기는 사라져버린다
이 소설은 범죄/폭력이라는 단절을 목격한 이후로도 이어지는 삶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둔다. (……) 일상의 질서는 그들이 기존의 안전한 세계로 다시 돌아오길 기대하고 이를 해피엔딩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여성 생존자-목격자인 지희와 규연에게 그 행복이란 기괴하기만 하다. 해피엔딩에서 멈추지 않고 무엇인가를 더 말해보려는 사람은, 겨우 회복된 안온한 분위기를 망친다. 그러면 역설적이게도,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을 가로막는 악역을 자연스레 떠맡게 된다. 소설은 그렇게 악역이 되어버린 목격자 지희와 규연이, 더욱 악역이 되어 말하려는 고투를 담고 있다.
-김건형, 「작품해설」 중에서
책 속으로
지희의 휴대폰에는 남자의 사진이 한 장 더 저장되어 있었다. 유괴범의 영정 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은정이 목사로부터 건네받은 후 다시 지희에게 보내준 것이었다. 지희는 은정이 자신에게 그 사진을 보낸 까닭을 알고 있었다. 그는 지희의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이 얼굴이 맞다고 말해줘. 내 딸을 죽인 범인의 얼굴이라고.
―18쪽
“예전에도 그랬지. 넌 날 범인이라고 했어. 그다음엔 또 그랬지. 사실 기억이 안 난다고. 잘못 본 것 같다고. 매번 그런 식이야. 멋대로 상상하고, 함부로 말을 내뱉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지. 네가 어떻게 일을 망쳐놓는지 봐라. 넌 여전히 그대로야. 달라진 게 없어.”
“이번 일은 죄송해요. 그런데요, 전 제가 보고 느낀 게 전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 그런데 넌 왜 끝까지 네 주장을 지키지 못하지?”
“그건…….”
“너도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 모르니까! 네 말의 신빙성은 딱 그 정도인 거야.”
―151쪽
정말로 그만두고 싶어. 기억나지 않는 얼굴을 그리고 또 그려대는 거, 나도 답답하고 지긋지긋해. 근데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눈앞에 그 인간이 지나가는데, 그놈이 날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정작 나는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 무서웠으니까.
―186쪽
생수로 시현의 상처를 씻어내고 약을 바르며, 규연은 미성의 깨진 무릎을 떠올렸다. 그때도 이렇게 피를 닦아줄걸. 아프냐고 물어볼걸. 그리고 나도 사실은 상처가 아파서 매일 밤 펑펑 운다고 말해줄걸.
―205쪽
지희에게 끔찍한 내상을 입힌 것은 유괴범이었지만, 오랜 시간 서서히 지희의 마음을 갉아먹어온 쪽은 은정이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 책임을 지는 것이 맞지 않은가. 은정은 종종 지희 역시 피해자라는 사실을 잊은 듯이 굴었는데, 지희는 매번 그걸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자신이 겪은 고통이 타인을 향한 폭력에 당위성을 부여해준다고 믿는 걸까.
―241쪽
무책임한 말들은 나이테처럼 지희의 안에 고스란히 흉을 남겼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공격에는 좀처럼 내성이 생기지 않았고, 경험은 이미 알고 있는 공포를 일깨울 뿐이었다.
―250쪽
마침내 마주한 진실은 지희를 아프게 찔러댔다. 어쩌면 미성은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대신 죽는 쪽은 자신이었겠지만. 그런데 어째서 둘 중 하나만 살아남는 결말이어야 했을까. 둘 다 살아 돌아올 수는 없었나.
나는 너를 놔두고 도망쳤지. 네가 나 대신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미성의 존재를 잊은 채 달음박질치던 순간을 떠올리면 한없이 죄스러웠다.
―2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