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이강숙 선생의 첫 장편소설. 음악교육가로서 일선에서 뛰었던 저자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쓴 음악교육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다. 이 책은 지방도시의 소시민층 가정에서 태어난 현민영이 피아니스트가 되어가는 과정과 진정한 음악가의 길을 중첩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예술환경이 권력화 됨으로써 진정한 음악교육가들이 소외되고 나아가 진정한 예술가들이 태어날 수 없는 안타까운 음악 풍토를 예리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또한 '음악의 조건에 이르고자 하는 것은 무릇 예술만이 아닌 사람의 삶 그 자체'라는 음악의 본질을 집약하고 있다.
이강숙
1936년 경북 청도 출생.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후,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음악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KBS 교향악단 초대 총감독과 서울대 음대 교수직을 거친 저자는 1993년 음악원을 시작으로 6년에 걸쳐 음악원을 포함한 6개원(연극원, 미술원, 영상원, 무용원, 전통 예술원)을 개원, 현재의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체제를 완성시켰다. 1992년에는 초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으로, 1998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2002년 2월 3대 총장까지 연임하였다. 현재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음악학술 계간지 [낭만음악](통권61호)를 발간하고 있으며, 1998년 [현대문학]에 명 에세이 '술과 아내'를, 2001년에 단편 '빈 병 교향곡'을 발표하여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발표작으로는 단편 '세 개의 눈', '쇼팽의 넋', '내 친구 정현이'와 중편 '즉흥 연주를 하는 사람들' 등이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음악의 방법] [음악의 이해] [한국음악학] [음악적 모국어를 위하여] [음악선생님을 위하여]와 산문집 [술과 아내 그리고 예술] 등이 있다.
■ 이 책은…
한국 음악계의 거목이자 한국 음악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온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이강숙 선생의 첫 장편소설 『피아니스트의 탄생』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음악에 기울였던 열정 못지않게 문학에 열정을 쏟으며 그는, 현재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장을 맡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지금까지 음악교육가로서 일선에서 뛰었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한 ‘음악소설'이라는 이채로운 소설이다. 그는 “지금까지 음악관련 서적과 피아노를 잘 배우는 방법을 논문 형식으로 여러 번 소개”했었으나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밝히며, 주변에서 “보통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로 그 방법을 풀어 달라는 요청이 많아 소설을 쓰게 됐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피아니스트가 되어가는 과정과 진정한 음악가의 길을 중첩시키고 있는 이 소설의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지방도시의 소시민층 가정에서 태어난 현민영은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자아가 강한 아이였다. 또래 아이들의 놀이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민영이였지만 피아노 앞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었다. 그런 아이의 장래를 생각해 민영의 엄마 윤정순은 피아노를 가르치기로 결정한다. 우리 사회의 통념상 남자아이에게 피아노 공부를 시키겠다는 결정은 쉽지 않은 것인데, 이는 성악을 하고 싶었던 윤정순의 꿈과 무관하지 않다.
피아노 선생님을 찾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강주섭이라는 노인. 강주섭은 민영에게 피아노를 직접 사사하지 않지만 진정한 예술가로 성장시키려는 세심한 배려로 단계별 선생님을 소개하는 등, 시작부터 끝까지 정신적 스승 역할을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강주섭의 소개로 만나게 되는 첫 단계 피아노 선생님은 원주혁, 그는 민영에게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피아노와 친숙해지고 피아노를 사랑하게 만드는 역할을 2년간 맡는다. 두 번째 단계의 선생님은 원주혁의 선배인 서혜전, 그는 ‘피아니스트를 훈련시키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민영에게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켜 콩쿠르에 출전시킨다. 하지만 연거푸 두 차례나 콩쿠르에서 실패하자 한계를 느끼고 자신의 스승 남주영에게 민영을 보낸다. 세 번째 스승인 남주영은 피아노 레슨이 아니라 ‘극기 훈련'에 가까울 정도의 혹독한 정신적 연습을 시킨다. 그러나, 음악권력이란 메커니즘이 지배하는 국내 콩쿠르에서 또 실패를 본다. 이 환경에서는 엄정한 심사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 콩쿠르에 참가시켜 전격적으로 2위에 입상시킨다. 귀국 후 콩쿠르 입상 축하 독주회를 열면서 팸플릿의 사사란에 남주영보다 몇 차례 레슨을 받았던 미국의 존 벌루가 강조되어 인쇄되는 주최측의 전략으로 남주영은 민영을 키운 스승으로서 배신감에 좌절하게 되고, 민영은 선생을 잃게 된다. 그런 민영에게 강주섭은 여진원 교수를 소개한다. 여진원 교수는 이제까지의 선생님들의 장점만 골라 갖춘 사람이었다. 오랜 연습을 거친 후 여진원의 권유로 민영은 유럽 음악의 본고장 이탈리아 M시에서 열리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한다. 국제적으로 내노라 하는 유수한 피아니스트들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놀랍게도 민영은 최연소의 나이로 1위를 차지한다.
1위를 하고 돌아온 민영과의 산행에서 강주섭은 민영에게 ‘세계 무대에서 팔리는 상품이 되지 말고 자기의 예술혼을 찾아 그 혼과 평생을 같이 할' 것을 당부한다. 또한, 서양 음악만 뒤쫓을 것이 아니라 서양 사람들에게 우리 음악을 알려 우리 음악을 좋아하게 만들어 한국을 ‘음악의 본고장'으로 만들라고 진심으로 당부한다. 이 당부는 강주섭의 입을 빌은 이강숙 선생의 후학들에 대한 애정어린 당부도 될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한국 예술환경이 권력화 됨으로써 진정한 음악교육가들이 소외되고 나아가 진정한 예술가들이 태어날 수 없는 안타까운 음악 풍토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음악교육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또한 우리에게 음악의 본질을 생각게 하는데, 이 작품의 축사에서 김우창 선생은 “음악은 귀와 머리의 모순과 화합 위에 존재한다. 청각을 떠나서 음악은 존재할 수 없지만, 지적 구상력을 떠나서도 존재할 수 없다. 이 두 부분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신비가 음악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음악의 조건에 이르고자 하는 것은 무릇 예술만이 아니고 사람의 삶 그것이기도 하다.”면서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음악의 본질을 집약하고 있다.
■ 축하의 글
『피아니스트의 탄생』은 고희를 눈앞에 두고도 젊음을 과시하듯 활동적인 음악학자이며 교육행정가로 이름 높은 저자가 우리 앞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이다. 과거에 서양에서도 ‘전원교향악'이니 ‘대위법'이니 하는 음악의 작품명이나 용어로 제목을 삼거나 음악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더러 있었으나 이 작품처럼 음악 그 자체의 문제를 다룬 소설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한 뜻에서 『피아니스트의 탄생』은 ‘음악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야심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종길(시인, 고려대 명예교수)
음악은 귀와 머리의 모순과 화합 위에 존재한다. 청각을 떠나서 음악은 존재할 수 없지만, 지적 구상력을 떠나서도 존재할 수 없다. 이 두 부분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신비가 음악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음악의 조건에 이르고자 하는 것은 무릇 예술만이 아니고 사람의 삶 그것이기도 하다.
이강숙 선생은 피아니스트이고, 음악이론가이고, 한국 예술의 관리인이고 문화활동의 수호자이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우리는 그가 수필가이고 소설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그는 소설 『피아니스트의 탄생』을 내놓게 되었다. 문학이 원하는 것은 바로 감각으로 사는 인간의 삶을 하나의 의미의 구조 속에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이강숙 선생의 글과 말씀에 접해온 나는 그의 소설이 이 여러 가지 것들을 하나로 묶는 구축물이 될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제 그의 소설이 소품에서 교향악으로 그 폭을 넓힌 것으로 보인다. 소설이 나오는 때에 마침 국외에 있어서 나는 이 소설의 교향악에 곧바로 접하지는 못한다. 우선 심심한 축하의 뜻만이라도 전하고 싶다.
-김우창(문학평론가, 고려대 명예교수)
■ ‘작가의 말' 중에서
피아노란 무엇인가. 우리 나라 부모들은 자식에게 피아노를 왜 가르치려고 하는가.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음악가들은 음악을 문제 삼기도 하지만 음악 이전의 음악 조건을 문제 삼을 때가 있다. 피아노 소리는 피아노 음악 이전의 음악 조건이다. 피아노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음악 때문이기도 하지만 음악 이전의 음악 조건인 피아노 소리 그 자체의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하다. 소리 자체는 아직 음악은 아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들은 피아노 음악에 넋을 잃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넋을 잃게 하는 이 아름다움에 못 이겨 사람들이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피아노를 잘 배워야 하는데 잘못 배우는 경우가 많다. 나는 평생을 이 문제로 고민했다. 사람들이 왜 피아노를 잘못 배우는가. 한 사람의 피아니스트가 탄생되는 길이 왜 이렇게도 험악한가. 『피아니스트의 탄생』에서 해답이 찾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