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려내는 주체가 청소년이라는 건 그야말로 미래에 어울리는 선택 아닌가.
장르적 재미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청소년 소설이 담아내야 할 문학적 전망을 보여준다.”
-심사평(구병모, 김민령, 이기호, 최영희 작가)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목소리가 될
제1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한국 현대문학의 산실 현대문학과 교육출판 미래엔이 청소년의 창의적인 사유와 무한한 상상력을 확립시킬 수 있는 문학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제정한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이 제1회 수상작을 선보인다. “청소년 소설의 문학적 전망을 제시했다” “책을 닫는 순간과 독자와 분리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의 마음속에서 증폭되는 이야기다”라는 심사위원의 찬사와 지지를 얻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된 임고을 장편소설 『녹일 수 있다면』이다. 임고을 작가는 공들여 쌓아올린 세계관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정밀한 묘사, 학교 폭력과 입시 경쟁 등 현실에 밀착된 등장인물들의 면면, 그리고 묵직한 윤리적 질문들을 가지고 처음으로 청소년 독자들을 만난다.
『녹일 수 있다면』은 불가사의한 외부 힘에 의해 온 지구가 영하 200도로 급속 냉각된 세상에서 얼어붙은 인간을 녹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10대 두 자매의 이야기다. 세상을 얼릴 수도 있고, 녹일 수도 있는 양가적 권한을 온전히 두 자매에게만 부여함으로써 작품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에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전경’을 드러내는데, “얼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다는 공포와 그럼에도 희망을 품고 녹이는 작업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작품 곳곳에 배치되어 긴장과 두려움, 안도와 분노 같은 다양한 감정을 이입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사람을 살려내는 주체가 청소년이라는 건 그야말로 미래에 어울리는 선택”이라며 “소설 속의 인물들이 달려가는 길을 응원하고 싶어진다”(구병모)라는 심사평과 “얼어붙은 사람을 녹여 되살려낼 수 있다면 누구를 살려낼 것인가, 되살아난 사람이 또 누군가를 녹이고 싶어 한다면 그 욕망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등등 청소년소설로서 품어야 할 진지한 질문들을 놓치지 않았다”(김민령)라는 심사평은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목소리가 될 저력 있는 작가의 탄생을 예고한다.
“날 꼭 녹여 줘. 빨리 와! 기다릴게”
얼어붙은 땅에서 누군가를 녹이는 선택에 대하여
소설은 멋대로 집을 나가 얼어버린 서리를 찾으러 나서는 서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괴짜 천재 과학자인 할머니의 예언대로 지구는 어느 날 갑자기 꽁꽁 얼어버렸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일상이 스냅숏처럼 멈춰버렸다. 서진, 서리 자매는 기이할 정도로 풍족한 아지트에서 살아남는다. 할머니가 미리 마련해둔 아지트에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섬세하게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세계를 구해낼 수 있는 고도의 장비가 준비되어 있다. 그 둘만의 일상에 균열을 내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바로 서리가 서진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언니가 처음으로 녹이는 인간이 나였으면 좋겠어. 언니 말대로 혹시 잘못된다면 그건 그냥 내 잘못이잖아. 언니가 누누이 강조한 대로 난 책임질 수 있는 일을 벌인 거야.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날 꼭 녹여 줘. 빨리 와! 기다릴게.” -본문 29~30면
10대 주인공 서진에게 수많은 냉동 인간들의 생사여탈권을 쥐어준 설정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주인공에게는 어떠한 선택 조건이나 기준도 없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만이 부여되었다. 과연 어른 없는 세계에서 아이들의 선택은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지만
잘못된 선택을 반복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서진은 자신의 바람대로 서리‘만’ 녹여서 돌아오지 못한다. 서진은 혜성을 녹이고, 서리는 유진과 태양을 녹인다. 그렇게 집에 모인 다섯 아이들 앞에는 무겁고도 커다란 질문이 놓인다. ‘누구를 녹이고, 누구를 얼릴 것인가.’ 이는 다섯 아이들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에게 누군가를 녹일 권한이 주어진다면 누굴 녹일까? 대부분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우선일 테다. 그다음은 선량한 사람일 수도 있고, 나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서진은 약한 사람들을 녹이고 싶었다.
분명 존재하는데 세상에 없는 듯 보이지 않았던 선한 사람들을 녹이고 싶었다. -본문 197쪽
하지만 서리가 녹인 유진은 서진에게 끈질긴 트라우마를 안긴 학교 폭력의 가해자다. 입시 지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태양은 다시 얼려달라고 말한다. 서진이 혜성과 노인을 녹인 것은 순전히 실수였다. 이 모든 선택은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중 일부는 완벽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기준조차 흐려진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답을 찾기 위해 분투하지만, 이들이 반드시 선량하고 올바른 사람을 골라서 살려낼 수 없었다는 점이 이 소설이 지닌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선택에 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인간은 어떤 세계가 되어서든 두 명 이상 모여 있으면 반목하는 것이 인간의 항구적 운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묵직한 질문을 청소년 주인공들의 시각에 담아 독자 앞에 던지며 청소년을 주체의 자리에 데려다놓는다.
“이 세계는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소설의 인물들은 앞으로도 모험을 계속 할 듯
결말이 열려 있지만, 그들이 달려가는 길을 응원하고 싶어진다는 점에서
제1회 수상작으로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_심사평
■ 추천의 글
외기 영하 217도의 세계에서 얼어붙은 인간을 녹여서 살려내는 이야기는 분명 오늘날 만연한 삭막한 마음을 뭉근하게 녹여 준다. 사람을 살려내는 주체가 청소년이라는 건 그야말로 미래에 어울리는 선택 아닌가. 소설 속의 인물들이 달려가는 길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_구병모 (소설가)
좋은 청소년 소설은 청소년 인물을 장기판 위의 무력한 말이 아니라 창을 들고 달려가는 돈키호테의 후예들로 그려낸다. 꽁꽁 얼어붙은 세계에서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전능한 소녀들이라니. 장르적 재미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청소년 소설이 담아내야 할 문학적 전망을 보여준다. _김민령(동화?청소년문학 작가)
이 작품의 ‘녹임/얼림’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은유로 다가왔다. 말하자면 지금 이 얼어버린 세상에서 얼음이 된 존재는 누구인지, 그중 우리가 ‘튜브’ 안으로 이끌어야 할 존재는 누구인지, 그에 대한 질문이 이 작품 안에 내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디스토피아가 아닌, 지금 우리 시대의 이야기다. _이기호(소설가?광주대 교수)
좋은 소설에는 독자를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는 구경꾼으로 두지 않고,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그리고 일반 성장소설과 청소년 소설의 차이는 이야기의 현재진행성에 있다. 일반 성장소설은 대개 후일담의 형태를 띠지만 청소년 소설은 충돌과 해체. 수습과 성장의 과정이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한다. (…) 읽는 내내 『녹일 수 있다면』이라는 작품이 질문을 던진다고 느꼈다. “모두가 얼어버린 세상에서 너에게 몇 사람을 녹일 기회와 능력이 주어진다면 너는 누구를 선택할래?” _최영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