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청호의 네 번째 창작집 『코코스』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은 주인공들을 앞세워 과거의 기억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그 과거와의 불편한 조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미발표작인 중편 「사막의 집」과 4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폐허'라는 테마를 소재로 과거의 시간 속에 봉인해두었던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은 단순한 서사의 구조를 넘어 박청호 소설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박청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1996년 「문학과사회」에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치명적인 것들』, 소설집 『단 한 편의 연애소설』『소년 소녀를 만나다』『질병과 사랑』『벚꽃 뜰』, 장편소설 『그가 나를 살해하다』『갱스터스 파라다이스』『사흘 동안』『사랑의 수사학』등을 출간하였고, 현재 국립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이 책은... 40대, 흔히 386세대라 일컫는 이들에게 과거란 어떤 모습일까. 이들에게도 과거는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의 풍경으로만 남아 있을까. 386세대 작가인 박청호가 보여주는 과거의 모습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얼룩진 역사적 풍경이 아니다. 『코코스』를 통해 박청호가 그리는 과거는 ‘욕망’과 ‘폐허’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소설에서 과거는 낯설고 당혹스러운 기억이다.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패한 시간이다. 이렇게 과거는 욕망, 폐허, 죽음의 키워드로 집약된다. 그리고 작가는 그것들과의 당혹스러운 조우를 거침없이 받아들임으로써 현실의 자기 존재감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중편소설 「사막의 집」은 이라크 전장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던 ‘수’의 관이 한국에 도착한 뒤 친구인 내가 그의 행장을 쓰기 위해 이라크로 직접 떠나 주인공의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사막의 한가운데, 진정한 대상을 찍고자 갈구했던 수의 사진처럼 그곳에 박제된 과거의 풍경은 작가의 시선으로 능숙하게 복원된다. 「폐허와 빈 곳」은 위령비 건립 사업에 설계자로 참여한 건축가 K의 이야기를 소재로 역사적 사건과 건축을 빗대어 공간과 존재의 관계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이미지의 폐허」는 우연히 보게 된 옆집 남자의 시를 읽으면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과거에 일어났던 어느 죽음의 풍경을 그린다. 「종이집」은 지금의 386세대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지방 공무원으로 좌천된 주인공은 그곳에서 동창생을 만나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추악했던 욕망을 들춰낸다. 「코코스」에서도 이 같은 과거와의 불편한 조우는 계속된다. 한때 사귀었던 두 여인과의 만남,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와 함께 느끼는 불혹을 넘어선 위태로운 남자의 모습이 ‘코코스’라는 과거의 공간을 통해 재생된다. 『코코스』에 수록된 작품에는 유독 사진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순간의 현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사각의 프레임에 담아내는 작가의 시선은 카메라 렌즈처럼, 인화된 사진처럼 집요하고 정교하다. 그 안의 풍경에서 엿보이는 과거의 시간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폐부처럼 건조하게 말라버린 허무의 풍경들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역설적으로 현실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인식을 보여준다. 더 이상 꿈을 꾸는 일이 불가능해진 나이 불혹, 이제 의지하거나 핑계를 댈 수 없는 이들의 삶은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다. 오직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고 책임을 지는 일, 그렇게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씁쓸한 모습이 인화되지 않은 네거티브 필름처럼 그들 앞에 펼쳐져 있다. ■ 본문 중에서 사진들은 모두 ‘절멸’의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비누처럼 매끄러운 여인들의 몸이 모두 시체처럼 느껴졌다. 생의 관능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여인들을 배치한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벽과 골목 사이에는 텅 빈 것들밖에 없었다. 여자들이 모두 지워지고 없었다. 여자들은 풍경과 어울리지 않고 자기 자신 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결코 모델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그냥 여자로 서 있거나 누워 있었다. 울거나 잠들거나 버려졌거나 아니면 그것 모두였다. 그러니까 사진에는 여자들이 없었다. 그가 찍은 사진에는 모델이 없었다. 그들은 그냥 대상일 뿐이었다. 사진으로 매개된 여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들은 모두 사진 이전이거나 이후였다. 그의 사진에는 사건이 없었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의 사진은 텅 비어 있었다. - 「사막의 집」 중에서 건축이 역사를 만나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이 못됐다. 이것은 고건축물이 그 자체로 역사가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역사에 대한 사후 건축물이란 얼마나 옹색한 변명인가. 의병들이 싸우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때 살아남은 자들이 지금 기념비를 세우려고 하고 있다. K는 처음으로 이 일을 맡은 것이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회의하기 시작했다. K는 건축이란 인간의 활동 중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궁극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인간이 이 땅에 살았음을 증명하는 최초이자 마지막 자기증명이 바로 건축이었다. 물론 다른 말로는 폐허였다. 건축은 폐허의 동어반복이었다. - 「폐허와 빈 곳」 중에서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 두 살인자들이 나를 감금하고 죽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사진을 찍을 것이다. 나 역시 할머니처럼 서서히 죽어가면서 죽음의 시간을 연기할 것이다. 그들은 멀티미디어 영상이라는 신종 예술을 위하여 피사체를 공격하고 결국 물어뜯어 죽일 것이다. K는 이건 그저 악몽일 뿐이야, 하고 생각했지만 악몽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것조차 악몽의 반복일 뿐이라면 어쩌지, 하고 자기 말을 되풀이했다. 이건 정말 현실이 아니야. K는 악몽 속으로 더 깊이 달아났다. ---「이미지의 폐허」 중에서 나는 S고교에 다녔던 시절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나는 과거를 반추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내게 과거란 고해성사 해야 할 죄목들의 길고 끝나지 않는 목록일 뿐이었다. 나는 결코 내 인생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현실과 현재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며 미래가 온들 거기서 무슨 희망을 볼 것인가 하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나는 과거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고 서둘러 미래를 꿈꾸고 싶지 않았다. 불혹이 지난 나이에 미래란 늙음과 죽음뿐이었고, 과거란 청춘에 대한 회한만 불러올 뿐이었다. --- 「종이집」 중에서 아버지가 코코스에서 떡갈비를 먹자고 했을 때 누이 중 하나가 반대 의견을 내놓았을지도 모른다. 코코스의 음식 맛은 정말 형편없고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식구들을 그곳에 데리고 간 것은 맛 좋은 저녁을 먹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그곳이 코코스였기 때문이리라. 단 한 번도 가족끼리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족끼리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어떤 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왜 그런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일까. --- 「코코스」 중에서 뒤늦게 대면하게 되는 ‘과거’는 불쾌하다. 부지불식간에 저질렀던 속도위반처럼 과거는 때로 예상치 못했던 대가를 요구한다. 우체통에 꽂힌 범칙금 통고서마냥 그렇게 과거는 현재에 침투한다. 애써 지우고자 했던 실제는 끈질긴 인증작용을 거쳐 연루를 입증해낸다. 사진, 증언, 목격은 과거로부터의 이탈을 방해한다. 엄밀히 말해, 추억이란 불미스러운 과거를 봉합하기 위한 위장 전술이다. 어설픈 봉합이 덮은 과거 위에 현재는 지속된다. 그런데 간혹 이 봉합이 터져 은닉했던 과거들이 현재에 유출되기도 한다. 현재의 삶에 낮은 포복으로 숨어 있던 과거가 갑작스레 정색을 하고 덤벼드는 것이다. 언제나 뒤늦게, 사후적으로 고지되는 통지서처럼 추억은 때 아닌 책임을 강요한다. ---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