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1 / 0

닫기
인터넷 서점 바로가기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교보문고
다운로드
표지 이미지 보도 자료

풀의 죽음 The Death of Grass

  • 저자 존 크리스토퍼 지음
  • 역자 박중서
  • ISBN 979-11-88547-09-8
  • 출간일 2018년 02월 26일
  • 사양 368쪽 | 207*134
  • 정가 14,000원

치명적 바이러스의 창궐, 거짓말하는 정부, 무너진 사회 규범
인류의 오만함과 서양 우월주의를 꼬집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걸작!

현대문학-폴라북스의 과학소설 브랜드 ‘미래의 문학’은 문학사적인 의의뿐만 아니라 작품 본연의 재미에도 충실한 해외 걸작을 소개하고 있다. 미래의 문학 아홉 번째 도서는 존 윈덤의 『트리피드의 날』(미래의 문학07)과 함께 영국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존 크리스토퍼의 『풀의 죽음』(1956)이다. 볏과 식물(쌀, 밀, 호밀 등)을 공격하는 ‘충리 바이러스’로 인해 일어난 세계적인 기근에 영국 사회가 서서히 무너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작품이 발표된 195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고 유례없는 경제 성장기를 맞아 영국인들의 자긍심이 높던 시기였다. 가상의 사건이지만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는 대신 국민을 속이는 데 급급한 영국 정부, 생존을 위해 ‘영국인다운’ 고상함을 기꺼이 포기한 중산층, 무법지대로 변한 잉글랜드의 모습은 영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풀의 죽음』은 영국인의 풍족한 삶이 자연과 세계 여러 국가의 희생에 의존하고 있음을 꼬집고, 먹고사는 문제가 충족되지 않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야만 상태로 전락하는지 보여주었다.

작가 존 크리스토퍼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렸을 때 우리가 지금의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대재앙 이후에도 사회가 본래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는지 묻는다. 『풀의 죽음』은 생존을 위해 문명의 겉치장을 쉽게 벗어던진 사회를 그린 섬뜩한 심리 스릴러이자, 환경 파괴로 인한 자연의 복수를 일찍이 경고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걸작이다. 1957년 존 크리스토퍼는 이 작품으로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함께 국제환상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 줄거리

 

1950년대, 세계는 볏과 식물을 공격해 괴사시키는 ‘충리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식량 부족으로 인해 중국, 인도, 미얀마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대기근으로 수억에 달하는 인구가 죽음에 이르지만,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자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바이러스 치료와 식량 보유고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유럽에 상륙하자 그 모든 게 거짓임이 드러나고, 정부를 믿었던 영국인들은 더 큰 혼란에 빠진다. 식량 조절과 소요 사태 진압을 위해 계엄을 선포하는 영국 정부. 존 커스턴스는 런던 봉쇄 직전, 친구 로저와 함께 가족을 데리고 도시를 탈출해 형 데이비드가 기다리는 안전한 북서부로 향한다.

 

■ 본문 중에서

 

“하지만 ‘어쩌면’ 다른 누군가도 그 정보를 가졌을 수 있어. ‘어쩌면’ 우리를 구할 또 다른 수단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문제의 바이러스가 스스로 알아서 사멸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먼저 전 세계가 태양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지. 그렇다면 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일자리만 잃은 셈이 되겠군. 그걸 정치적 용어와 정부의 수준으로 바꿔 표현하자면 이런 거야. 만약 우리가 바이러스를 저지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유일하게 이치에 닿는 일은 바이러스가 휩쓸 만한 땅에 모조리 감자를 심는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바이러스를 저지할 수 없다는 사실은 과연 어느 단계에서 판정되어야 하는 걸까? 그리고 만약 우리가 잉글랜드의 푸르고 쾌적한 땅을 온통 감자밭으로 바꿔놓은 다음에야 비로소 누군가가 바이러스를 없애는 데 성공한다면 어떨까. 자네가 상상하기에는 그다음 해에 빵 대신 감자를 제공받은 유권자들이 뭐라고 할 것 같아?”

“그들이 뭐라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뭐라고 말해야 마땅한지는 확실히 알지. ‘감사합니다, 하느님. 우리도 중국인처럼 서로를 잡아먹어야 하는 상황까지 떨어지지는 않게 해주셔서’라고 말해야겠지.”

-52쪽

 

“오늘 중으로 런던을 비롯한 모든 인구 밀집 지역의 외곽에 군대가 배치될 거야. 내일 새벽부터는 도로도 모두 차단될 거고.”

존이 말했다. “그 양반이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 그것뿐이라니……. 세상 모든 군대를 다 동원한다 치더라도, 도시 하나가 굶주림의 압력을 못 이기고 사방팔방으로 터져서 흩어지는 걸 막지 못할 텐데. 그 사람은 도대체 그렇게 해서 무슨 이득을 보겠다는 걸까?”

“시간이지. 자신의 두 번째 실천 과제에 대한 준비를 완료하기 위해 필요한 그 귀중한 일용품을 충분히 벌겠다는 거야.”

“그 실천 과제라는 게 뭔데?”

“우선 소도시에는 원자폭탄을 한 개씩, 리버풀과 버밍엄과 글래스고와 리즈 같은 대도시에는 수소폭탄을 한 개씩, 그리고 런던에는 수소폭탄을 두세 개쯤 떨어트리는 거지. 그 정도로 무기를 남용해도 아무 상관은 없을 거야. 어차피 앞으로 한동안은 필요하지도 않을 테니까.”

-92쪽

 

그는 갑자기 기운이 쭉 빠졌다. 마치 과거의 자신이, 즉 문명인이었던 자신이 갑자기 이 모든 사태에 관해 설명을 요구하고 나선 듯한 기분이었다. 삶이 일정 수준 밑으로 확 가라앉아버린 상황에서, 과연 이런 삶은 계속해서 이어나갈 가치가 있을까? 한때 그들은 거의 4천 년 가까운 계보를 가진 도덕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불과 하루 만에 이 모두를 벗어던지고 만 격이었다.

그렇다면 여전히 그걸 고수하는 사람들이, 즉 주위에서 대혼란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여전히 사랑의 문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할까?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령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결국 죽고 말 것이고, 그 아이들도 함께 죽고 말 것이다. 오래전 그들의 선조들이 로마의 투기장에서 죽고 말았던 것처럼 말이다. 순간 그는 자기도 그렇게 죽을 수 있을 만큼의 신앙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자기가 지도자로서 이끌 고 있는, 그리고 지금은 저기서 잠든 작은 집단을 내려다보자, 이제는 그들의 삶이야말로 그들의 죽음보다 자기에게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193쪽

 

“유령 열차였어. 갑자기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린 것 같더라니까. 그러다가 10분쯤 지나니까, 농담이 아니라 멀리서 덜컹거리는 소리까지 들리더라고.”

“진짜 기차였을 수도 있지.” 존이 말했다. “물론 그걸 운행할 사람을 용케 찾아낸 기차가 있다고 치면 말이야. 만약 그렇다면 한밤중에라도 기차를 운행할 수 있겠지. 하지만 현재 상황을 모두 고려해보면,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여.”

“그러니 나로서도 차라리 유령 열차였다고 믿고 싶은 거라고. 시장에 가려는 데일스 주민의 유령을 잔뜩 실은, 또는 유령 석탄이나 유령 광물을 화차에 잔뜩 실은 유령 열차가 페나인 산맥을 넘어갔다고 말이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 철로가 지금처럼 철로다운 상태를 과연 언제까지 유지할까? 한 20년쯤? 아니면 30년쯤? 또 사람들은 옛날에 이런 물건이 있었다는 걸 과연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이러다가 우리의 증손자들은 옛날에 석탄을 집어 먹고 연기를 뱉어내는 강철 괴물이 있었다는 전설을 듣게 되는 건 아닐까?”

“가서 잠이나 자.” 존이 말했다. “자네의 증손자들에 관해 생각할 시간이라면 앞으로도 충분히 많을 테니까 말이야.”

-226~227쪽

연관 도서

로그인 후 이용해주세요.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