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앎, 놀이, 구원의 욕망을 통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원론적으로 제시한 정명환의 문학에세이집. 2005년 2월부터 12월까지 「현대문학」에 총 여섯 번에 걸쳐 연재되었던 작품을 제목을 바꾸고 내용을 수정, 보완해 펴냈다. 이 책은 작가가 여러 대학에서의 강의 경험을 살려 쓴 '스무 살 내외의 일반 청년들을 위한 일종의 문학원론'으로, 총6장으로 나누어져 구성되어 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문학의 실용적 효과에 대해 설명한 제1장, 문학이라는 이름의 허구에 대해 논하는 제2장, 과학와 문학, 이의 제기로서의 문학을 거론하며 여러 작품들을 통한 인지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제3장으로 이루어진다. 문학과 놀이의 상관관계에 다룬 제4장, 창조욕, 지식욕, 유희욕을 전부 포함한 구원 욕망의 집대성인 문학을 논하는 제5장, 앞의 강의 내용들을 정리하며 문학작품 읽기가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풍요롭게 해준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담긴 제6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 이 책은
창조, 앎, 놀이, 구원의 욕망을 통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원론적으로 제시한 정명환의 문학에세이! 불문학자이자 평론가로 한국문학과 반세기를 함께 해온 정명환 선생의 『젊은이를 위한 문학이야기』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2005년 2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총 6회에 걸쳐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됐던 「문학이란 무엇인가―청소년을 위한 문학개론」을 재차 다듬어 출간한 것으로, 여러 대학에서의 문학강의 경험을 살려 쓴 ‘스무 살 내외의 일반 청년들을 위한, 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집필한 문학원론서이다.
정명환 선생의 평소 문학관이 만듦, 앎, 놀이, 구원이라는 인간의 네 가지 욕망으로 구현된 이 책은 총 6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문학으로의 초대」에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문학의 실용적 효과에 대해 설명한다. 즉 문학적 여행을 통해 우리는 다른 환경과 사람들과 문명에 대해 너그러워질 수 있으며, 이는 곧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리이며 평화의 기본조건이다. 또한 이질적인 것과의 접촉은 자신이 지녀온 생각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만들어줌으로써, 문학이란 앞으로 이어나갈 더 값진 모색과 시도를 도우려는 인생의 반려이다. 「창작으로서의 문학」에서는 ‘상상을 통해서 없는 것을 만드는 행위나 그렇게 만들어진 산물’인 문학이라는 이름의 ‘허구(虛構, fiction)’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춘수의 「꽃」과 이청준의 「눈길」을 예로 들며 문학적 창작은 현실을 일종의 도약대 삼아서 이루어진다. 문학은 현실에 대한 불만을 넘어서 보려는 욕망이자 현실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하려는 욕망의 소산으로, 이런 욕망이 없다면 작가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이며, 독자는 그의 작품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문학을 통한 앎」은 과학과 문학, 이의 제기로서의 문학을 거론하며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정현종의 「거울」, 로브 그리예의 『질투』와 사르트르의 『구토』 등의 작품들을 통한 인지(人智)의 가치에 대해 말한다. 인지는 인간의 최고의 이상이며, “진실한 인생,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인생, 따라서 진실로 체험된 유일한 인생, 그것이 문학이다”라는 프르스트의 말에 빗대어 문학을 통한 앎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한다. 『문학과 놀이』에서는 호이징가(Huizinga)의 『노는 인간(Homo Ludens)』과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의 『놀이와 인간』을 통해 놀이의 정의를 생각해보고 문학작품과 놀이, 문학적 언어유희, 한없이 다양한 시적 언어, 문체라는 이름의 언어유희 등으로 갈래를 나누어 문학과 놀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래 제의(祭儀)와 예술과 놀이는 삼위일체였다는 호이징가의 주장을 통해 만듦과 앎을 향한 욕망과 마찬가지로 놀이의 욕망과 그 중요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문학과 구원」에서는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욕망, 즉 창조욕, 지식욕, 유희욕을 전부 포함한 구원을 향한 욕망을 들고 있다. 문학이란 도통이나 해탈의 경지 자체를 찬양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의 세계는 도리어 안주(安住)의 자리를 찾으려고 벌이는 천태망상의 시도, 가지가지의 성공과 좌절로 엮인 시도들로 이루어졌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서부터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인간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불행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추구해왔고, 문학은 이런 우리들 각자의 개인적 경험을 넘어서는, 구원 욕망의 집대성인 것이다. 「이야기를 마치면서」는 앞의 강의내용들을 정리하며 생존경쟁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변전하는 사회에 적응해나갈 수밖에 없는 젊은 청년들을 향한 저자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문학작품 읽기가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풍요롭게 해줄 수 있으며, 삶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통해서, 자아의 정체성 회복을 통해서, 그리고 그 숱한 이질적인 사물과 인물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는 얻을 수 없는 진실과 기쁨을 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 책 속으로
나에게 결정적인 충격을 준 것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었다. 나는 그 책을 읽고 무척 흥분했었다. 문학이 기존관념에 대한 이의제기異議提起이며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 인식은 그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후기 중에서 문학적 여행은 적어도 두 가지의 매우 값진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것은 자신의 것과는 다른 환경과 사람들과 문명에 대한 너그러운 생각을 갖게 해줍니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너그러운 생각이란 용서해준다는 뜻이 아니라 널리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심판이나 배척이 아니라 그 이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리이며 평화의 기본조건입니다. 둘째로 이질적인 것과의 접촉은 자신이 지녀온 생각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베풀어줍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해온 것은 하나의 편견이 아니었던가, 내가 일상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은 더 값진 어떤 것을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진실한 행복은 어디 있을까 하는 따위의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해주는 것이 바로 문학작품입니다. (36쪽) 문학이 여러분에게 베푸는 정신적 여행을 통해서, 그리고 여러분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일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확실하고 결정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할지 모릅니다. 그런 해결책이란 쉽게 발견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인생에 관한 결정적 대답은 오직 죽을 때에나 주어지는 것이며 그동안에는 더 진정한 삶을 위한 모색과 시도가 있을 따름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문학이란 여러분이 앞으로 이어나갈 더 값진 모색과 시도를 도우려는 인생의 반려라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37쪽)
문학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명작감상을 하거나, 국가별·지역별로 문학의 특색을 들어올리거나, 시·소설·희곡과 같은 갈래에 따라 설명하거나, 혹은 낭만주의·사실주의·상징주의와 같은 이른바 문예사조를 짚어나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관례에서 벗어나 모든 문학에 통할 수 있는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되도록 쉽게 해보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문학이란 이름의 여행을 통해서 여기저기로 찾아가 보기 전에, 우리는 왜 그런 여행을 하며 또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좀더 원리적으로 살펴나가 보려고 합니다. 나는 그것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네 가지의 정신적 욕망과 관련시켜서 풀어볼까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무엇을 만들려는 욕망, 앎을 향한 욕망, 놀이의 욕망 그리고 구원을 향한 욕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그 네 가지 욕망의 복합체로서 문학을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문학에서 그 각각의 욕망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또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얽히는지를 많은 예를 들어가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결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니까 여러분이 끝까지 따라와주리라고 믿습니다. ( 37~38쪽)
여러분은 불가피하게 생존경쟁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변전하는 사회에 적응해나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작품 읽기가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삶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통해서, 자아의 정체성의 회복을 통해서, 그리고 또 숱한 이질적異質的인 사물이나 인물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일상생활에서는 얻을 수 없는 진실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 양면작전이 전혀 불가능할까요? 물론 그 두 가지는 자칫 모순되는 일이겠죠. 하지만 모순이 없는 인생이란 원래 있을 수 없는 것이며, 모순은 우리를 좌절시키기도 하지만 새로운 삶의 창조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해온 문학이야기가 여러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 모순을 지녀나가고 또 욕심 같아서는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247~248쪽)
인생을 위한 예술과 예술을 위한 예술의 구별은 무의미해집니다. 삶의 현실과 멀다고 느껴지는 순수한 아름다움, 고티에 자신이 다듬은 주옥과 같은 시만이 아니라, 우리의 그 동요에서도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이 어찌 인생과 무관하겠습니까?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움 없이 어떻게 인생을 견뎌나가겠습니까? 아름다움을 규범으로 삼지 않고 일상적 현실과 사회를 어떻게 비판해나가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예술을 그런 식으로 두 가지 상반된 것으로 구분한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짐작이 갈 겁니다. 존재하는 모든 예술은 오직 인생을 위한 예술입니다. (2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