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조성기 1951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주요 작품으로 『라하트 하헤렙』 『야훼의 밤』(전4권) 『슬픈 듯이 조금 빠르게』 『왕과 개』 『바바의 나라』 『굴원의 노래』 『우리 시대의 사랑』 『우리 시대의 소설가』 『통도사 가는 길』 『에덴의 불칼』(전7권) 『욕망의 오감도』 『안티고네의 밤』 『일연의 꿈, 삼국유사』(전2권) 『우리는 완전히 만나지 않았다』 『내 영혼의 백야』 『실직자 욥의 묵시록』 등이 있다. <오늘의 작가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 이 책은 시간과 공간, 기억과 상실을 통해 인간과 삶의 본질, 그리고 자기 존재의 근원을 되짚어본 조성기의 자전적이고 고백적인 열네 편의 연작소설! 성(聖)과 속(俗), 둘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특한 빛깔의 작품을 발표해왔던 소설가 조성기 씨가 이번에는 그의 자전적 소설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를 내놓았다. 이번 소설집은 2003년 현대문학 1월호부터 12월호까지 연재되었던 연작소설을 묶은 것으로, 연재되었던 야심찬 작품 외에 네 편의 작품을 더 엮어 총 열네 편의 작품을 수록하였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동안 인간 내면의 존재론적 성찰과 동양 고전을 재해석하는 작업에서 성취한 철학적 탐구는 작가가 자기 인생에서의 공간을 모티프로 하여 오랜 시간의 흐름을 추억하기 위한 작업으로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를 엮는데 큰 힘을 발휘하게 했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의해 지워지고, 덧씌워진 기억의 조각조각들을 조각보처럼 하나하나 연결시키면서, 잃어버린 공간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문학 모체들을 ‘그리움' 혹은 ‘본원의 어떤 것에 대한 깊은 동경과 향수'로 드러낸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13년에 걸쳐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나왔던 에피소드를 용광로에 넣어 재주조한 것처럼 당대의 존재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 신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고민들까지 짚어내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열네 편의 작품들은 고백 소설체의 직접 화법을 이용해서 독자들에게 친근할 뿐 아니라 아주 쉽게 읽히도록 한다. 첫 번째 소설 「고향 점묘」는 이번 연작 소설의 자궁이며 모체가 되는 그리움의 공간으로, 구체적인 작가 체험의 공간인 ‘고향'에 얽힌 가족과 개인의 삶을 깊이 있는 시선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공간이다. 시간에 대한 최대한의 공경이 담겼다는 어머니 이름은 이시자(李時子), 어머니는 나의 시간을 창조해준 또 하나의 ‘시간님'이며, 어머니의 자궁 속에 고향이 들어 있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하여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경남 고성(固城)의 지명 유래부터 학다리에 얽힌 에피소드, 조모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이 태어나기까지의 이야기들이다. 「잠자리에 대한 명상」은 인간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성적 이야기들을 잠자리라는 구체적 소도구로 표현해낸 소설이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기막히게 잠자리를 잘하는 잠자리는 움충스런 이야기들을 하는 외조모집 과부들의 엉덩이에 깔려 죽기도 하고, 과부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든 주인공의 사타구니 속으로 들어와 야릇한 쾌감을 주며 주인공을 잠에서 깨우기도 한다. 이 잠자리를 통해 본 인간 내면의 본능과 작가의 정서적 성장을 유머러스하게 잘 조화시켜내고 있다. 「오늘 시험 잘 봤나?」는 전교 1등을 강요하는 아버지와 전교 1등에 얽매인 주인공의 ‘전교 1등'에 대한 추억담을 담은 이야기다.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가 강요하지 않은 전교 1등을 함으로써 아버지에게서 해방될 줄 알았으나 이 일은 아버지의 투지를 더욱 불태우는 계기가 되고 만다. 결국 주인공은 《현대문학》과 카뮈의 작품들을 읽기 시작하고, 그 후로 단 한 번도 전교 1등을 하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20년 만에 처음으로 동창회에 참석한 주인공은 문제를 못 푼다고 면박 주었던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교 1등을 했던 지난 일들을 후회한다. 「거꾸로 선 음표」는 ‘거꾸로'가 오히려 익숙한 주인공의 이야기다. 재즈드럼 연주가 유복성이 하모니카를 거꾸로 부는 것을 보고 자신이 그동안 하모니카를 거꾸로 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피아노도 거꾸로 치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여교사와 여행을 갔다 온 것이 들통 난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하모니카를 연주하려던 주인공에게 아버지는 ‘풍진세상'이란 노래를 아느냐고 묻는다. 주인공은 모른다고 말하고 아버지는 알면 ‘인생을 거꾸로 사는 거지'라고 말한다. 「내 이름의 수난사」는 말 그대로 작가의 이름이기도 한 ‘조성기(趙星其)'란 이름의 수난사다. 성적인 연상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이름 덕에 주인공은 친구들에게 ‘좃성기'로 불리며 놀림을 받는다. 참다 못 한 어머니가 작명소에 가 이름을 ‘조종구'로 지어오니, 이것은 다시 ‘조조 굴러라. 종종 굴러라. 구구 굴러라'로 불리며 놀림을 받는다. 다시 어머니는 이름을 ‘조성연'으로 지어오고 ‘좃선년'으로 바뀌어 또 놀림을 받으니 그야말로 이름의 수난사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군대생활 때 다른 막사에 들어가 관물을 훔쳐왔는데, 하필 훔쳐온 것이 동명인 조성기의 것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1989년 말경 작품이 실린 문학잡지에 이름이 기성기(起星基)로, 대학 총동창회 명부에는 조성기(趙星期)로, 법대 동창회 명부에는 조성기(曺星基)로, 더 나아가 족보에는 조성기(趙性基)로 되어 있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런 자신의 이름에 얽힌 여러 에피소드에 얽힌 이야기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일찍이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에서 그 작업을 끈질기게 감행한 바 있다. 너무도 방대하고 정교해서 그 소설을 따라 읽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나도 그런 작업을 하되 좀더 가독성(可讀性) 있는 작품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늘 있었다. 다시 말해 독자들이 재미를 느끼면서 뭔가 가슴에 울림도 있는 그런 작품들을 써보았으면 했다. 또한 고전작가들처럼 시간순 혹은 연대순으로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요즈음 컴퓨터에서 종종 활용하는 ‘랜덤(random) 기법'을 응용하여 독자들이 두뇌전환을 해가며 지루하지 않게 읽어나가도록 하고 싶었다. …… 사라진 공간, 잃어버린 공간도 결국은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일정한 부분에 대해 관념적인 복원이나마 해놓고 싶어서 이번 작업을 해보았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성격의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어머니 이름도 특이하다. 시자(時子). 시간에 공자의 자(子) 자를 붙인 격이다. 시간에 대한 최대한의 공경이 어머니 이름에 담겨 있다. 그야말로 어머니는 나의 시간을 창조해준 또 하나의 ‘시간님'이시다. 그리고 그 시간은 공간이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 고향이 들어 있다. 내가 고향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고향이 나에게서 태어났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태어날 때. 다시 말해, 어머니는 나를 창조하였고 나는 고향을 창조하였다. - 본문 9p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몰래 오른손을 사타구니로 집어넣어 조몰락거리기 일쑤였다. 잠자리 날개들이 포개져 끼여 있던 손가락들 사이로 이번에는 나의 작은 물건이 비죽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다가 얼핏 잠이 들면 방으로 잡혀온 고추잠자리들이 모조리 내 사타구니로 들어와 날개를 퍼덕였다. 나의 물건을 쓰다듬는 날개들의 감촉이 얼마나 좋은지 나는 까무러칠 것만 같아 퍼뜩 잠에서 깨어나곤 하였다. - 본문 41p “니 좋제?” “간지럽다 마. 조꾄해 가지고.” “나는 미군이 아이다카이.” 우리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어느 유명한 사람들처럼 점잖은 미국 선교사를 통하여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무덤 사이에 벌거벗고 누워 있는 미군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이 아무리 세계의 정의로운 파수꾼인 양 외쳐대어도 나의 의식은 무덤과 무덤 사이를 떠날 수가 없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전쟁은 무덤과 무덤 사이에 있을 뿐이다. -본문 45p 결국 졸병 중 하나가 실토를 하였다. 그렇게 성병파와 비성병파를 구분해보니 성병파가 여섯 명이요 비성병파가 나를 포함하여 네 명이었다. 비성병파는 모포를 통해서도 성병이 옮겨올 수 있다고 여겨져, 성병파들과 매트리스 하나만큼 떨어져서 취침을 하였다. “문화선전대 좋아하네. 이거 완전히 성병선전대군. 문선대가 아니라 성선대야.” “성선대 그러니까, 문선대보다 어쩐지 더 성스러운 것 같은데. 히히.” 졸병들이 자리에 누워 모포를 뒤집어쓰고 소리를 낮추어 수군거렸다. -본문 59p 나는 내가 쓴 글을 소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나를 소설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더욱 이상하게 여겨진다. 내가 쓴 글은 글일 뿐이고 나는 나일 뿐이다. ‘조성기의 소설'이라고 불리는 모든 작품과 책들을 그냥 ‘조성기의 글'이라고 개명한다. 내가 언젠가 ‘위대한 미치광이'라는 작품을 발표하였을 때 어떤 평론가는 ‘이 작품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소설이라 부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 평하였다. 나는 발끈하여 반론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스스로 소설가라는 굴레와 소설이라는 착고 속으로 목을 디밀고 기어들어가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그 평론가의 말이 지당하기 그지없는데도 내가 ‘소설은 소설이다' 외쳐대었으니 그야말로 내가 졸렬한 미치광이가 된 셈이다. - 본문 13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