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집에 있습니다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52 회

누워 있을 수 있는데 왜 앉아 있어야 하죠?

그렇다. 바로 이거다. 누워 있을 수만 있다면 한없이 누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집돌이나 집순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여러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집 근처까지는 잠깐 나가는 사람, 집 안(거실 포함)에만 있으면 되는 사람, 방 안에만 있는 사람, 침대에만 있는 사람. 굳이 따지자면 나는 침대에 있는 사람이다. 나는 누울 수 있는 곳이라면 최선을 다해 눕고 싶다고 생각한다.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집에서 바쁘다. 청소도 빨래도 설거지도 밥을 먹는 것도 치우는 것도 다 혼자 해야 하기 때문이다. 틈틈이 책도 읽고 시도 쓰고 운동도 하고 눕는 것도 해야 하니 바쁠 수밖에 없다. 집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단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어서 사실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글쎄요. 답답하면 창문을 열고 밖을 보면 되지 않나요?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질문한 사람은 그거랑 이거랑 같으냐고 말할 것이다. 나에겐 집 안과 집 바깥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진다. 그러니 누울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모두 외출로 간주한다.

 

나간 김에 다 하고 돌아오자. 외출하는 날엔 수업도 하고, 수업을 듣기도 하고, 일도 마치고, 친구도 만나고, 미뤄두었던 병원도 가고, 마트도 들른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틀 연속으로 약속이 잡혀 있다면 나가기도 전에 몸이 살짝 지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나가면 그 누구보다도 재밌게 또 알차게 놀다 온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양가감정이 드는데, 하나는 밖에 나와야만 이 재미난 것들을 즐길 수 있구나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역시 집이 최고구나 하는 것이다. 내향인에게 일주일 내내 약속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극악무도한 일이다. 혹 그렇게 일정을 보냈다면 최소 이틀, 최대 일주일은 쉬어야 회복이 되는 것 같다(물론 이것 또한 프리랜서라서 가능한 일 같다).

 

초등학생 때부터 방학만 되면 나는 그렇게 집에 누워 있고 싶었다. 격렬하게 집에 누워 있다가 개학 며칠 전에 방학 숙제를 하는 아이였다. 때문에 나는 늘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아니 사실 며칠 전에야 알게 되었다. 집에만 오면 눕는 사람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긴장감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긴장감이 높은 사람은 어떤 변화를 마주하거나 새로운 것을 하게 되면 그 긴장을 완화시키려고 오히려 집에서 한없이 누워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또한 예민한 사람이라는 뜻이겠지. 외부 자극에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편안한 장소는 집일 것이다.

 

휴일에 무엇을 했냐는 질문에 집에 있었다고 답을 하면, 집에서 무엇을 했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누워만 있었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모르게 민망하고 머쓱하다. 나를 게으르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아니면 뭔가를 숨기고 말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쉬기로 마음먹은 날에는 정말 하루 종일 누워 있는데 말이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도 지루하거나 심심하지가 않다. 충분히, 더 충분히 누워 있을 수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보면서. 그렇다. 사실 나는 미디어 세계에 빠져 지낸다. 흔한 도파민 중독이다. 물론 나도 잘 알고 있다. 미디어로 인한 도파민 중독이 얼마나 위험한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도 끝도 없이 무언가 주입되는 상태가 그리 건강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가끔은 누워 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불안함이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책상 앞으로 가게 된다. 잠시 미뤄두었던 책도 읽고, 쓰고 싶은 시도 쓰고, 일기든 뭐든 끄적이다가 다시 눕는다. 할 일을 열심히 했으니 다시 열심히 눕는 것이다.

 

가만 보면 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냥 집에 있는 게 좋다기보다는 집에서 할 것이 많은 사람들 같다. 한없이 게으른 것이 아니라 단지 긴장감이 높은 우리는, 집 밖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집에 있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