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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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회

흐린 날보다 맑은 날에, 슬픈 음악을 들을 때보다 경쾌한 음악을 들을 때, 시린 겨울보다 청명한 여름에 유독 더 가라앉을 때가 있다. 너무 맑아서, 모든 게 비현실적인 장면처럼 느껴져서, 이렇게 맑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엔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불안할 때가 있다. 꼭 태풍이 오기 전 전조 현상 같다고 해야 할까?

 

좋은 일이 생기면 일단 불안하다. 기쁨보단 불안함이 먼저 떠오른다. 이다음엔 얼마나 불행한 일이 나를 찾아오려고 이렇게 좋은 일이 찾아왔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기쁜 날에도 기쁨이 오래가지 못한다. 나는 마치 모든 게 준비되었다는 듯이 그래. 와라. 그 불행 내가 어떻게든 견뎌낸다.’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인다. 그러나 준비된 불행도, 준비되지 않은 불행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저에게 이런 불행을 주시다니 솔직히 정말 밉지만 그래도 힘을 주세요.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제발요…… 한 번만요.’

 

사람들은 불행이 찾아오거나 아픔이 찾아오면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한다. 나는 회복이 빠른 편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간이 지난다고 회복이 되긴 될까 하는 의문도 든다.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복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묻어두는 것은 아닐까? 빠르게 묻어두고 제 할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한없이 슬퍼진다. 어른은 슬퍼할 시간도 모자라구나. 차라리 바쁘게 사는 게 낫다는 어른의 말을 실감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번 시간이 약인 것 같지는 않다. 시간보단 힘이 없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슬픈 일이다.

 

회복 탄력성이라는 말이 있다. 그건 어떻게 키우는 것일까. 내 경우에 불안은 사라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아꼈던 물건, 내가 열심히 노력했던 공부나 어떤 결과물,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신뢰, 괜찮다고 생각했던 관계 등. 그런 것이 내 옆에 있다가 사라지면 혹은 사라질까봐 불안하다. 살아가다보면 예기치 못하게 내가 소중히 여겼던 것들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인데 문제는 그 원인을 나한테 찾는다는 것이다. 나에게 문제가 있진 않을까,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하며 꽤나 오랫동안 반성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회복 탄력성이 있을 리가 없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급격하게 불안해질 때도 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 마감이 코앞이라서, 주어진 일들이 너무 많아서, 옛날 일이 떠올라서, 기쁘고 행복하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면 나는 어느 순간에 행복할까? 질문해볼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무엇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오늘 아무것도 안 해도 내일까지 마음이 괜찮은 것, 그래도 모든 게 그대로인 것, 그게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려고만 하면 왜 이렇게 큰 이불을 덮은 것처럼 불안이 나를 눌러올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봐? 연예인 홍진경은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아니 이럴 수가. 정말 이마를 탁 하고 칠 수밖에 없는 대답이 아닌가. 무언가를 풍요롭게 채우는 것이 행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를 가볍게 비워내는 것도 행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상태, 그 정도로 의연해지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는 이 불안과 어떻게 함께 잘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그러니까 흐린 날엔, 슬픈 음악을 들을 땐, 시린 겨울엔 나보다도 더 불안한 것들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만 같아서, 그쪽으로 핑계를 댈 수 있어서 오히려 더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날엔 아주 또 가끔 힘이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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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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