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데 모르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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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회

길을 지나가다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분명 아는데 모르는 얼굴 같다. 먼저 가서 알은체를 할 수도 없고, 선뜻 누구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어디서 봤더라? 답답해 죽겠는데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아는데 모르는 얼굴을 지나쳐 간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얼굴뿐만 아니라 뒤통수를 닮은 사람들도 있다. 동그란 뒤통수, 조금 납작한 뒤통수, 가르마가 오른쪽으로 타진 뒤통수. 머리카락이 뻗친 뒤통수 등. 뒷모습이 너무 비슷해서 반갑다고 인사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옷차림이나 말투, 제스처, 목소리가 비슷한 사람들도 있다. 간혹 가다 친구에게 지금 어디냐고, 방금 ○○사거리를 지나가지 않았느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혹시 지금 지나친 사람, 진짜로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나는 꿈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마주치는데 (꿈에 사람이 나오면 별로 좋지 못한 꿈이라고 한다) 현실에서 만나볼 법한 얼굴들이라 그런지 꿈이라고 자각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몇 년에 걸쳐 같은 꿈을 여러 번 꾼 적이 있었다. 꿈을 꾸면 꿀수록 이건 또다시 그 꿈이구나, 생각하면서 꿈이라고 자각하게 되었다.

 

그 꿈은 어느 한 카페에 앉아 있는 것부터 시작한다. 조금 오래된 카페고, 갈색으로 칠해진 나무 벽이 돋보이는 그런 공간이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대뜸 손을 내밀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양혜미 씨라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고 내 이름을 말한다. 그러자 그는 이미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말한다. 나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자 우리가 진짜로 만나게 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는 무어라 더 말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주문을 잘못해 카페 종업원과 언성을 높이는 중이다. 원두 갈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커피 냄새가 진하게 느껴진다. 양혜미 씨는 이 상황을 너무 무서워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먼저 일어나겠다며 카페 밖으로 금방 사라져버린다.

 

나는 종종 꿈에 나온 그 사람을 떠올린다. 늘 같은 카페에서 커피를 함께 마시다가 먼저 일어나는 양혜미 씨는 어디에 있을까. 아직 꿈속에 머물러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혹시 이미 실제로 마주치진 않았을까? 이름까지도 명확하게 알기 때문에 나는 실제로 그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말을 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만나보지 못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걸 수도 있다. 문득 지금 이곳 어딘가에 그 사람이 있을 것만 같다.

 

길을 지나가다 아는데 모르는 얼굴을 마주치면 혹시 꿈에서 보았나? 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꿈에 나온 그 사람과 분위기가 비슷한 저 사람, 정말 맞는 게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는데 모르는 얼굴들은 꿈에도 등장하고 시에도 등장한다. 예를 들면 그런 것이다. 눈만 아는 사람, 뒤통수만 아는 사람, 옷차림만 아는 사람, 손가락만 아는 사람. 처음부터 완벽하게 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 시작은 언제나 일부분만 아는 사람이다. 시가 진행될수록 일부로만 존재했던 한 사람을 조금씩 천천히 완성시켜보려 한다. 그러나 꿈이 끝나도, 시가 끝나도 나는 그 사람을 완성하지 못한다. 애초에 완성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시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분명 아는데 모르는 얼굴 같다는 것, 흐릿하면서도 명확한 것 같고, 명확하면서도 흐릿하다는 것. 현실에서도 내가 좀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전혀 모를 때가 있는 것처럼.

 

나는 오늘도 아는데 모르는 얼굴들 사이로 걸어가본다. 자주 가는 카페의 종업원, 물리치료 선생님, 학교 선생님들, 가끔 만나는 친구들, 그리고 꿈에 나온 그 사람. 아는데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간혹 의심하면서, 반복되는 장면 속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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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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