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엔 왠지 모르게 더 쉽게 우울해지고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49 회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새해가 지나가고 있다. 1월달은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금방 지나간다. 1월 중순엔 내 생일이 있다. 탁상 달력을 받으면 항상 새해와 내 생일부터 먼저 적는다. 그리고 차근차근 계획했던 것들을 적어본다. 새로울 건 없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1년 치의 달력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생일이 코앞이다. 나에겐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다.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가도 빨리 왔으면 좋겠고,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가도 빨리 가지 않았으면 좋겠기도 하다. 단순히 나이 한 살을 먹는 슬픔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애매한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 생일날엔 더 쉽게 우울해지는 것 같다. 무언가를 하기도, 무언가를 하지 않기도 애매한 날이다. 생각해보면 생일날은 우울하지 않은 시간보다 우울했던 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조금 슬픈 말이긴 하지만 그냥 태어났다는 사실이 상기되기 때문에 우울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나는 왜 태어났을까? 스물일곱 살 때 큰마음을 먹고 부모님께 물어보았다. 저는 계획되었나요? 두 분은 계획을 했다고 한다. 그 계획에 성공했고, 내가 나왔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자식을 원했나요? 물어보니 그냥 건강하기만 바랐다고 한다. 그런 건 다 옛날이야기 아닌가 싶어서 지금은 어떠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이제는 알아서 잘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러고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알아서 잘 살기 어렵고, 자리를 잡지 못한 어른이었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괜히 더 우울해지는 것만 같았다.

 

축하해, 그 한마디가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나에게 말이다. 다른 이들의 생일엔 잘만 축하해주면서 나의 생일엔 왜 축하를 해주지 못할까. 생일이 겨울방학 기간이라서 그런지 시끄럽게 보내본 적도 없지만 나는 생일날 초를 부는 것도, 선물을 받는 것도,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 것도 민망하다. 태어난 게 민망한 건 아닌데 생일날은 그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축하를 받는 이상한 날이기도 하니까.

이상하게 생일날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어디를 가게 되면 실망이 더 컸던 것 같다. 오늘 하루를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던 걸까?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턴가 무언가를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었다. 다른 날과 별반 다르지 않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평온하게 지나가게 해주세요. 그런데 또 너무 다른 날과 비슷하면 특별한 날이 아니지 않나?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무사히 평온하게, 그러나 조금은 특별하게 보내게 해주세요. 이렇게 다시 정정해본다.

 

그래도 케이크에 촛불은 불어야지. 맛있는 걸 먹고 풍요롭게 보내야지. 좋아하는 책방에 가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축하받는 게 조금 어색할지라도 그들을 위해서라도 잘 받아야지. 스물여덟 번째 생일엔 나 자신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해보았다. 초도 켜고 선물도 주었다. 눈물이 조금 날 뻔했지만 참았다. 이건 이전의 생일 때 느꼈던 감정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 축하한다는 말을 왜 지금까지 하지 못했을까? 기뻐해야 하는 날에 왜 그렇게 좋지 못한 생각만 떠올랐을까?

 

축하도 습관이다. 생일이 아니라 다른 축하를 받을 때도 나는 자주 민망해지곤 한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축하받을 자격이 있나? 라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너무 오버해서 생각하나. 생일날엔 생각이 또 많아진다. 축하는 축하로만 끝내자. 다른 어떠한 생각도 하지 말자. 내 생일인데 나 자신이 어떤 자격을 논한다면 너무 이상하지 않을까? 그러나 여전히 축하해, 이 한마디가 어려워서 이렇게 구구절절 쓰게 된다.

 

올해는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그중 하나는 나 자신에게 잘 축하하기다. 생일뿐만 아니라 축하할 일이 있다면 오랫동안 잘 축하하는 것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쁘게 받아들이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겁먹지 말자. 새해 다짐 아닌 다짐을 해본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