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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새해가 지나가고 있다. 1월달은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금방 지나간다. 1월 중순엔 내 생일이 있다. 탁상 달력을 받으면 항상 새해와 내 생일부터 먼저 적는다. 그리고 차근차근 계획했던 것들을 적어본다. 새로울 건 없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1년 치의 달력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생일이 코앞이다. 나에겐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다.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가도 빨리 왔으면 좋겠고,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가도 빨리 가지 않았으면 좋겠기도 하다. 단순히 나이 한 살을 먹는 슬픔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애매한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 생일날엔 더 쉽게 우울해지는 것 같다. 무언가를 하기도, 무언가를 하지 않기도 애매한 날이다. 생각해보면 생일날은 우울하지 않은 시간보다 우울했던 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조금 슬픈 말이긴 하지만 그냥 태어났다는 사실이 상기되기 때문에 우울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나는 왜 태어났을까? 스물일곱 살 때 큰마음을 먹고 부모님께 물어보았다. 저는 계획되었나요? 두 분은 계획을 했다고 한다. 그 계획에 성공했고, 내가 나왔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자식을 원했나요? 물어보니 그냥 건강하기만 바랐다고 한다. 그런 건 다 옛날이야기 아닌가 싶어서 지금은 어떠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이제는 알아서 잘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러고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알아서 잘 살기 어렵고, 자리를 잡지 못한 어른이었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괜히 더 우울해지는 것만 같았다.
축하해, 그 한마디가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나에게 말이다. 다른 이들의 생일엔 잘만 축하해주면서 나의 생일엔 왜 축하를 해주지 못할까. 생일이 겨울방학 기간이라서 그런지 시끄럽게 보내본 적도 없지만 나는 생일날 초를 부는 것도, 선물을 받는 것도,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 것도 민망하다. 태어난 게 민망한 건 아닌데 생일날은 그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축하를 받는 이상한 날이기도 하니까.
이상하게 생일날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어디를 가게 되면 실망이 더 컸던 것 같다. 오늘 하루를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던 걸까?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턴가 무언가를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었다. 다른 날과 별반 다르지 않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평온하게 지나가게 해주세요. 그런데 또 너무 다른 날과 비슷하면 특별한 날이 아니지 않나?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무사히 평온하게, 그러나 조금은 특별하게 보내게 해주세요. 이렇게 다시 정정해본다.
그래도 케이크에 촛불은 불어야지. 맛있는 걸 먹고 풍요롭게 보내야지. 좋아하는 책방에 가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축하받는 게 조금 어색할지라도 그들을 위해서라도 잘 받아야지. 스물여덟 번째 생일엔 나 자신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해보았다. 초도 켜고 선물도 주었다. 눈물이 조금 날 뻔했지만 참았다. 이건 이전의 생일 때 느꼈던 감정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 축하한다는 말을 왜 지금까지 하지 못했을까? 기뻐해야 하는 날에 왜 그렇게 좋지 못한 생각만 떠올랐을까?
축하도 습관이다. 생일이 아니라 다른 축하를 받을 때도 나는 자주 민망해지곤 한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축하받을 자격이 있나? 라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너무 오버해서 생각하나. 생일날엔 생각이 또 많아진다. 축하는 축하로만 끝내자. 다른 어떠한 생각도 하지 말자. 내 생일인데 나 자신이 어떤 자격을 논한다면 너무 이상하지 않을까? 그러나 여전히 축하해, 이 한마디가 어려워서 이렇게 구구절절 쓰게 된다.
올해는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그중 하나는 나 자신에게 잘 축하하기다. 생일뿐만 아니라 축하할 일이 있다면 오랫동안 잘 축하하는 것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쁘게 받아들이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겁먹지 말자. 새해 다짐 아닌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