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은 사람은 매번 자기 자신과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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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생각이 많은 사람은 매번 자기 자신과 싸운다. 그중에서도 특히 부끄러움과 가장 많이 싸우게 된다. 부끄럽다는 것은 매우 수줍다는 것, 또는 일을 잘 못하거나 양심에 거리끼어 볼 낯이 없거나 매우 떳떳하지 못한것을 의미한다.

 

나는 왜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을까? 어느 순간부터 부끄러움과 맞서 싸우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부끄러움엔 역사가 있었다. 유치원 생일파티에서 이름도 모르는 친구에게 볼 뽀뽀를 받던 순간부터 시를 못 써 아주 부끄러운 지금 이 순간까지 부끄러움은 늘 존재한다.

의자에 걸려 넘어져서 한동안 계속 누워 있던 일, 빙판길에 넘어졌을 때 동네 사람이 웃어대던 일,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치다 걸렸던 일, 수학 문제를 못 풀어 선생님에게 혼났던 일, 원하는 대학에 떨어졌던 일, 좋아하던 친구에게 고백도 못 해보고 차였던 일, 말을 잘못해서 일이 꼬였던 일, 전화를 잘못 걸었던 일. 이렇게 보니 부끄러움 천지인 것 같다.

 

어렸을 땐 궁금한 게 참 많았다. 부모님 말에 의하면 나는 말이 참 많았다고 했다. 당시 유행하던 웅변 학원을 굳이 보낼 이유가 없을 정도로 말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많이 다쳤다. 소매가 늘어나고, 무릎이 까지고, 곱게 묶어놨던 머리가 풀어헤쳐져서 오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아마 한 사람의 인생에 걸쳐 말의 총량이 있다면 반은 그때 다 쓰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커가면서 많은 이들이 말을 아끼게 되었을 것이다. 손을 들고 말하면 눈치를 준다거나 욕을 먹거나 한 소리 듣거나 그런 건 따로 말하라는 소리를 듣든가. 어느 순간 궁금한 걸 질문하면 부끄러운 사람이 되었다. 마치 쓰레기통이 없어 쓰레기를 고이 주머니에 집어넣고 집으로 가져오는 것처럼 궁금한 게 생기면 입을 꾹 닫고 집으로 가져와 일기에 적었다.

 

어느 순간부터 입 밖으로 꺼내는 말보다 입안에서 머무르게 되는 말이 많아졌다. 나는 이제 어떤 생각을 말로 꺼내기보다 머릿속에 머무르게 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어떻게 보면 글 쓰는 직업을 가진 것은 적합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을 최소화하려면 말을 머금고 있어야 했다. 나는 부끄러움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하거나 싫은 소리를 듣게 되면 부끄러움은 배가 되었다. 내 자신이 쉽게 부끄러워지는 것이었다. 그래, 뭐 이런 게 대수라고, 하며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넘어갈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부끄러운 감정을 마주하는 게 싫었던 게 아니라 이것도 모르는 내 자신이 그냥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이 생기면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놓고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게 꺼내어지는 순간은 사실 시를 쓸 때다. 시 안에서의 부끄러움은 현실에서의 부끄러움과 조금 다르다. 뭐랄까. 훨씬 더 용기가 있다고 해야 할까? 부끄럽지가 않고서는 시를 쓸 수가 없는 것 같다. 부끄러운 나를 풀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그곳에서 최대한 부끄럽게, 최대한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러고 나면 부끄러운 게 부끄러운 게 아니게 된다. 그래, 뭐 이런 게 대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부끄러움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살면서 진짜로 부끄러운 건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길 가다가 넘어졌다고, 수학 문제를 풀지 못했다고 부끄러운 것보다 정말로 부끄러운 건 척하는일인 것 같다. 이타적인 척, 생각하는 척, 모르는 걸 아는 척, 남을 위하는 척하는 것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매번 자기 자신과 싸우게 되지만, 무언가 척하는사람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싸우게 되는 것 같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부끄러운 걸 아는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섬세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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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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