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입니다. 저는 당연히 집에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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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회

큰일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크리스마스를 밖에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집에서 보낼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기념일엔 또 북적거리는 연말 분위기를 느끼고 싶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조용히 집에서 보내고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이브와 크리스마스 당일 둘 중 하나는 밖에서 보내는 게 가장 좋지 않은가 싶은데……. 사람들은 모두 크리스마스만 기다려온 것일까? 예약은 왜 이렇게 빨리 마감되는 것일까. 모두 기대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모두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올해 크리스마스는 조용하고 또 고요하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순간부터 크리스마스엔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집에서 잘 보내보자고 다짐했던 것 같다. 역시 크리스마스엔 집이 최고가 아닐까?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혼자 보내는 사람을 조금 안쓰럽게 보기도 한다. 물론 나 또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기가 싫었던 것 같다. 왠지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친구들, 애인이나 동료 등 여러 사람과 함께 보내야만 잘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용하고 고요하기보다 무언가 시끌벅적한 파티 느낌으로 말이다.

 

혼자서는 아주 멋진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는 없을까? 어느 순간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는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휴일이기도 하다.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책을 읽고 열심히 뒹굴거리는 날. 물론 이런 것들은 평소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가장 기대되는 것은 바로 영화다. 크리스마스에 어떤 영화를 볼지 정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건 크리스마스를 더 오래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 홀로 집에시리즈도 좋지만 나에게 크리스마스 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해리포터가 떠오르기도 한다. 해리포터시리즈 중에 1마법사의 돌24일 밤 103259초에 재생한다면 25일 정각에 해리와 론이 메리 크리스마스를 주고받는 것을 볼 수 있다.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것이다. 해리포터가 받은 선물은 투명 망토이다. 해리의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 중 하나인 깜짝 선물을 보며 어릴 적 산타 할아버지에게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선물을 받게 해달라고, 가끔은 호그와트 입학통지서를 원한다고 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준비한 선물을 산타 할아버지가 놓고 갔다고 믿었으니까, 진짜로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니까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지금도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에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다 같이 앉아 촛불을 부는, 녹아버리기 전에 열심히 먹었던 여러 가지 맛이 있는 케이크. 그 기억은 내겐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진 않고 대신 딸기가 정갈하게 놓인 케이크를 보며 촛불을 분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눈 소식이 있다. 아직까지 눈을 좋아하는 걸 보면 산타클로스를 믿었던 마음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내는 만큼 만반의 준비를 했다. 편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양식 밀키트를 준비했고, 번호를 따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명화도 준비했다. 명화는 눈 내리는 숲속에 홀로 불을 켜고 있는 오두막 같은 집이다. 혼자 조용히 그러나 평화롭게 불을 밝히고 있는 집 말이다. 저 집 안에는 왠지 모르게 어렸을 때 함께 케이크를 나눠 먹었던 좋은 추억이 있을 것만 같다.

 

어쩐지 크리스마스이브가 더 크리스마스 같고, 당일은 연휴의 연장선상 같다. 그리고 이브와 크리스마스 당일이 지나가면 왠지 모르게 급격하게 우울해진다. 26일부터 31일을 마음이 붕 뜨는 기간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이 기간엔 무엇을 해도 덧없게 느껴지고, 속절없이 시간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차라리 빨리 새해가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보내든 혼자 집에서 보내든 누군가의 탄생일에 이렇게 우울해본 적이 있나 싶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는 시끌벅적하게 모여 축하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홀로 조용히 축하하기도 한다. 그런 잔잔하고 고요한 축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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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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