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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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다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걸까? 나만 이렇게 엉망진창인 것은 아닐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내향인에 조금 더 가까운 나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기도 하지만 그만큼 생각이 많아져 금세 피곤해진다. 혼자 잘 놀다가 생각의 구렁텅이에 한번 빠지게 되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가 어려운 것 같다. 시를 쓸 때마다 무거운 추 하나를 매달고 깊은 심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드는데 사실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시는 내가 원할 때 들어가지만 생각은 원하지 않는 순간에도 들어가야 한다는 것,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가라앉게 된다는 것이다.

 

수면 위로 올라오는 방법은 하나다. 바로 생각을 멈추는 것. 그런데 생각을 어떻게 멈추더라? 나는 멈추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내게 생각은 해도 괜찮은 생각과 그렇지 않은 생각으로 나뉜다(주로 후자는 나 자신을 갉아먹는 생각이다). 해도 괜찮은 생각은 수면 위로 올라와 숨 쉴 구멍을 만들어준다. 그건 다시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다닌다. 유영하는 마음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땐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도 엉망진창인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들 겉으로 봤을 땐 멀쩡해 보인다. 어쩌면 세상은 멀쩡한 척 대결하는 사람들로 엉망진창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도 그중 하나이고 말이다.

 

이걸 비밀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중요한 자리에서 누군가 이상한 소리를 하면 우선 고개부터 끄덕인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는 다른 생각이 펼쳐진다. 집에 가서 뭐 하지? 가자마자 씻은 다음, 아니 설거지를 먼저 할까? 빨래를 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니다. 아무래도 택배부터 뜯는 게 낫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재율 씨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오기도 한다. 우선 시간 확보를 하기 위해 글쎄요? 라고 반문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한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의 반문을 통해 대화가 다시 시작되면 어느새 나는 굿 리스너가 되어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추를 매달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심해로 가라앉는다. 바닥에 다 닿고 나서야 내가 오늘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다. 지하철에서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그러니까 도대체 뭐가 저렇게 즐거운 걸까? 엉망진창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미로처럼 그려진 낙서 하나가 내 마음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다. 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출구를 찾을 힘이 없는 건지 마음이 없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택배를 뜯고 정리를 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빨래도 갠다. 그리고 다 씻고 누운 다음 무사히 하루를 잘 마쳐서 다행이라고 기도를 드린다. 나는 사실 생각보다 기도를 많이 하는 편이다. 두 손을 모으고 제발요, 이번 한 번만요. 문제는 다음에도 이번 한 번만이라고, 그다음에도 제발 이번 한 번만 부탁드린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신이라면 헛웃음을 지을 것 같다. 사실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지금 내가 쓴 비밀은 혼자만의 비밀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멀쩡한 척 살아가느라 모두 수고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묻고 싶다. 아니 진짜 저만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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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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