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에 오예스를 넣고 다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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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오예스를 넣고 다니는 사람, 그 사람은 사실 나다. 시인이라면 응당 시집 한 권과 공책, 그리고 펜을 들고 다녀야 할 것 같지만(물론 시집과 공책, 펜을 들고 다닐 때도 있지만……) 내 가방 한구석엔 오예스가 있다. 잠시 가방 안에 있는 것들을 나열해보자면 우선 핸드크림과 구강청결제, 칫솔과 치약 세트,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비상약과 반창고가 있다. 만약 누군가를 기다려야 한다면 비교적 얇은 책이나 아이패드를 챙겨 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오예스가 있다.

 

의사 :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 중독증입니다.

환자 : , 웃기는 소리.

 

인터넷에서 이런 그림을 한 번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 의사는 심각하다고 하지만 환자는 웃기는 소리라고 말하며 자신의 중독을 부정한다. 우리는 무언가에 열렬히 빠져 있으면 그것을 중독이라고 부른다. 나는 내가 무엇인가에 중독되었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무언가를 깊게, 열렬히 좋아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라고요? 내가 오예스 중독이라고요? , 웃기는 소리. 밥을 먹고 빵이나 단것이 끌린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초콜릿이나 단것을 먹어야 한다면, 주위에 항상 단 간식이 놓여 있다면, 삐빅, 당신은 심각한 당 중독입니다.

 

왜 하필 오예스일까? 초코파이도, 몽쉘도, 빅파이도, 카스타드도 아니고 하필 오예스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그중에서 얼려 먹으면 가장 맛있다. 조금 다른 이유라면 원형보다 각진 게 더 좋다. 나란히 놓고 보면 여백이 없어서 그런가. 심리적으로 네모난 게 더 마음이 편안하다. 사실 무슨 이유가 더 있겠는가. 오예스가 가장 맛있다. 오예스를 들고 다니면서부터, 왜 옛날 사람들이 힘들면 어디선가 초코파이를 꺼내서 먹는지 알게 되었다. 힘들면 단 게 끌리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힘든 날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한번은 밖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내 가방에서 오예스가 와르르 쏟아진 적이 있었다. 나는 당황했고, 친구 중 한 명은 가방에 오예스가 있네, 오예스를 들고 다녀? 하면서 웃었다. 순간 알 수 없는 수치심이 들었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오예스들을 주섬주섬 주워 가방에 다시 넣었다. 정말로 혹시 모르니까, 혹시나 당이 떨어질까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힘들 수도 있을까봐 넣고 다닌 것이었는데 이렇게 들킬 줄은 몰랐다. 그날 나는 정말 힘들었지만 오예스를 먹지 않았다. 한번 오예스를 선보인 이상 두 번 오예스를 꺼내 보이면서까지 그걸 먹을 수는 없었다. 오예스는 가방에 그대로 있는 채 잠시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오예스를 꺼내 먹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이제는 그냥 스트레스가 있구나, 많이 쌓였구나 하면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말해놓고는 오예스를 꺼내 먹는다. 오예스가 완전히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진 않지만 뭐랄까? 아주 잠시 스트레스를 잊게 해준다고 해야 할까?

 

그래. 이쯤되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당 중독이다. 당은 언제나 옳다. 화가 났을 때도, 우울할 때도, 심심할 때도, 시가 안 써질 때도, 정말 잘 써질 것 같은데 이번엔 정말 맞는 것 같은데 안 써지는 것 같을 때도 당은 늘 옳다. 그걸 먹는 내가 옳지 않을 뿐이다. 물론 건강을 생각해서 당을 정말로 줄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언제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듯이 흥, 웃기는 소리, 얼린 오예스가 얼마나 맛있는데, 라고 말하게 된다. 중독이 괜히 중독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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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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