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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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회

내가 좋아하는 게임은 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임이다. 예를 들면 집을 만들거나, 도시를 건설하거나, 공원을 조성하고 무엇보다 그곳에 살 수 있는 사람, 즉 시민을 만든다. 나는 왜 건설하는 게임을 좋아하나. 아무래도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대결을 해야 한다든가, 내가 살기 위해 누구를 죽여야만 하는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섭다. 내가 총을 들고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기보단 누군가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것에 극강의 공포를 느끼는 것 같다. 가상세계지만, 내 자신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캐릭터가 죽는 것이지만 아프다. 무섭고 슬프다. 이것도 과하게 몰입하는 것의 일종일까? 아무튼 그런 게임에 비하면 도시 건설 게임은 비교적 평화롭다(물론 다른 공포가 존재하긴 하지만……).

 

도시 건설 게임 중에, 내가 신이 되는 게임이 있다. 말 그대로 내가 신이 되어 창조를 하는 것이다. 창조는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 믿음이 생기기 위해선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거주지 근처에 나무를 만들어주거나, 분수를 만들어주거나, 기도원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게 생긴 믿음으로 일부 지역의 잠금을 해제하여 그들에게 더 큰 거주지를 제공할 수 있다. 물론 나의 손가락 한 번으로 나무를 타오르게 할 수도 있고, 그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

 

내가 신이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건 바로 자연재해다. 게임을 하는 도중에 언제 어디서 자연재해가 일어날지 모른다(내가 열심히 만들었으나 처참히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도시 건설 게임의 공포다). 비바람이 불고, 번개로 도시의 일부가 타고, 지진이 난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바라보는 것뿐.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그제야 도시를 복구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내가 시장이 되는 게임도 있다. 시장이 되는 게임에선 자원을 모아 무역을 할 수 있다. 빌딩을 지을 수 있으며, 시민들에게 문화생활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도시를 건설한다 해도 시민들의 불만이 늘 존재한다. 시민들의 불만은 말풍선으로 나타나는데, 예컨대 이런 것이다. “공원을 더 크게 지어주세요.” “문화센터가 필요해요.” “쓰레기 소각장이 너무 가까워요.” “배수가 잘되고 있지 않아요.” 대체로 삶과 직결된 내용들이다. 물론 시장인 나는 최선을 다해 시민들의 행복과 안전을 지켜주려고 노력한다(분명 땅만 더 넓었더라면…… 나의 시민들은 더 행복했을 것이다).

 

어떤 게임은 내가 그들의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직업과 취미까지 만들어줘야 한다. 일을 하다 번아웃이 오면 잠시 쉬게 해야 하며, 우울하다고 하면 파티를 열어줘야 하고, 워라밸을 지켜줘야 불만이 나오지 않는다. 현실 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신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든 세계에,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하단 바에 표시되는 그들의 행복지수는 무척이나 나를 신경 쓰이게 만든다. 내가 이 세계를 만들었으니 내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싶다. 내가 만든 세계의 사람들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람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하는 게임도 있지만, 놀이동산을 만드는 게임도 있다. 숲을 만드는 게임도 있고, 집 안을 꾸미는 게임도 있다. 무언가를 건설하는, 만드는 게임. 내가 이런 게임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비교적 쉽게 누군가에게 행복과 안정을 주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물론 게임에서조차 쉽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 속 도시를 건설하는 것과 시의 세계를 만드는 것은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무언가를 만들 토지가 있으며, 그 토지 위에 하나하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아무래도 차곡차곡 쌓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집을 만들기도 하고, 나무를 만들기도 하며, 의자를 만들기도 하고, 공원을 만들기도 한다. 그 속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을, 서로 대화하는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그들이 조금은 행복하기를,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믿음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래도 시인은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맞다. 아무것도 없는 도시든, 세계든, 때로는 슬픈 감정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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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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