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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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회

한 주 어떻게 보내셨어요?

그냥 그럭저럭 잘 보낸 것 같아요.

 

‘~인 것 같다는 사실 내가 자신이 없을 때 하는 말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한 주를 잘 보냈던가? 나는 왜 여기까지 와서 거짓말을 치고 있는가. 상담 선생님이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시진 않을까? 내 이야기가 지루하고 재미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말을 하는 게 좋을까 고르고, 또 골라서 한 주에 있었던 어떤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본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신다. 가끔 어떤 마음이었는지 다시 알려줄 수 있냐고 되묻곤 하지만 대체로 나의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주신다.

상담이 끝난 후에 혹시 시간이 괜찮으면 검사를 더 진행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나는 검사라는 말에 혹시 더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괜히 겁이 났다.

검사는 열 개의 그림을 보고 어떤 게 보이는지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대체적으로 그림은 모호했고, 선이 분명하지 않았다. 물감이 번지는 듯한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이야기했고, 나름 재밌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해가며 대답했다.

검사 결과가 나온 날 선생님은 내게 사고력이 좋다고, 상상력이 참 좋다고 해주셨다. 다만 열 개의 그림을 보고 이야기할 때 감정은 하나도 말하지 않았는데 혹시 기억이 나는지 물어보았다.

내가 그랬던가? 나는 그날로 다시 되돌아가본다. 열 개의 그림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나는 그날 어떤 감정을 느꼈더라? 정말 감정을 말하지 않았던가? 감정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더라? 돌아보면 그림은 꽤 웅장하면서도 무섭고, 슬펐던 것 같은데 나는 그런 것들을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선생님은 내가 감정을 표현하는 데 굉장히 서툴다고 했다.

우는 걸 잘하시나요?

선생님은 내게 그런 질문을 했다. 혼자 있을 땐 잘 우는 것 같은데(아니 사실 혼자 있을 때도 시원하게 울진 않는 것 같지만) 유독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잘 울지 못하는 것 같다. 뭐랄까. 울면 지는 것 같다. 뭘 잘했다고 우나 싶은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단호하게 잘 울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곧바로 잘 우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문득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버스를 타고 우는 장면이었는데, 목적지에 갈 때까지 펑펑 울던 주인공은 버스에서 내리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울음을 멈추었다. 주인공은 내리자마자 아주 잘 울었다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때 그 장면을 보면서 후련해 보이는 주인공이 부럽다고 생각했었다.

선생님은 잘 우는 것이란 어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늘 울음이 나오려고 할 때 참으려고만 했던 것 같다. 울음을 참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아주 오래전부터 생긴 습관이겠지. 상담을 할 땐 종종 어린 시절의 나를 제삼자처럼 보기도 한다. 어린 나는 자주 웃고 있다. 가끔 울고, 가끔은 울음을 참아보려 노력한다.

 

놀라운 건 잘 울어야 기쁨도 잘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선생님은 우는 것부터 천천히 시작해보자고 했다. 그날 나는 한 주 동안 잘 울고 오라는 과제를 받았다. 누가 나에게 시원하게 울어보라고 한 것은 처음이어서 내심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더 놀라운 건 내가 시 안에서는 슬픔을 잘 표현한다는 것이다. 과분하게도 첫 시집에서 슬픔의 정원사라는 호칭을 얻었는데 참 신기하다. 시 안에서는 울고불고 웃고 화해하고 함께하고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왜 이렇게 현실에선 모든 게 어려운지. “잘 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너무 열심히 달려서)라는 시구절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상담이 끝나갈 때쯤에 나는 정말로 잘 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고 돌아서서 나오는데 이상하게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울지도 않았는데 기분 탓일까? 아니면 용기를 얻었던 것일까. 조금은 잘 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잘 우는 사람이 되기까지 아주 먼 길을 가야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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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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