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간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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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회

상담 시간에 인내심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내가 정말 기다리는 것을 잘하나? 기다림 후에 무언가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래도 잘 기다릴 수 있는 것 같다. 내게 시는 기다리는 것 중 하나이다.

시가 오고 있는 걸까? 내가 시에게로 가고 있는 걸까?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는 서로 가고 있다. 우리는 중간에서 만난다. 그렇게 말했는데 생각해보면 좀처럼 쉽게 만나는 법이 없다. 가는 길이 순탄치 않고 때론 다른 풍경을 보느라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어 늦게 도착하기도 한다. 내가 그러는 동안 시 또한 그러하다. 시가 좀 먼저 오면 좋으련만…….

가끔은 시가 먼저 와주기도 한다. 어떤 장면을 봤을 때, 어떤 문장과 단어를 봤을 때, 그게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떠나지 않을 때, 혹은 시의 한 장면이 머릿속으로 그려질 때 나는 자연스레 메모장을 켜 기록한다. 기록은 곧 시가 된다.

 

시를 온전히 느끼고 싶을 땐 꼭 소리 내어 읽어본다. 낭독회에서 읽을 시를 준비할 때면 육성으로, 내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은 시들로 고르게 된다. 어떤 시는 눈으로 읽었을 때보다 작가의 목소리로 발화될 때 더 좋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다 쓰고 난 뒤에는 소리 내어 읽어보는 편이다. 마감 날짜에 맞춰 메일을 써놓고 보내기를 누르기 전, 천천히 내가 쓴 시를 낭독해본다. 그러다 무언가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조금씩, 또 조금씩 퇴고를 한다. 여러 번 낭독하고 비로소 걸리는 부분이 없을 때에야 나는 시를 보낼 수 있다(물론 보내놓고도 나중에 읽었을 때 또 다른 부분이 걸릴 수도 있다).

최근 내 시를 낭독한 경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아시아 문학 포럼 행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포럼 행사에서 외국 출판 관계자분들께 나의 두 번째 시집에 실린 해변에서라는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다. 사회자 선생님께서는 한국어로 시를 들려주면 좋겠다고 하셨고, 나는 곧바로 한국어로 나의 시를 낭독했다. 각 나라마다 통역사 선생님이 계셨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통역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시를 듣기로 했다. 시가 시작되자 홀에 있는 모두가 내 시를 듣고 있었다.

해변에서는 운율이 돋보이는 시도 아니고, 리듬감이 뛰어나게 형성된 시도 아니다. 그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경계에서 보이지 않는 신이 등장할 뿐이었다. 당연히 다른 나라 사람에겐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가 낯설게 들릴 것이다. 비록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감각적으로 라는 것을 느낄 수는 있겠지. 죽음이 도처에 깔려 있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정말로 존재한다면 기회를 줄 수도 있을 거야라는 마음을 가지고 썼던 시가 그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랐다.

홀에 내 시가 메아리처럼 퍼져 나갈 때, 그러니까 어떤 문장은 벽에 부딪히고 어떤 문장은 누군가에게 전달될 때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나의 시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테지만 이해하고, 이해받고 있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 내가 시에게로, 시가 나에게로 다가와 우리가 함께한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시 같은 건 쓰고 싶지 않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또 다시 시 같은 것을, 시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시는 쓰고 있을 때보다 쓰고 있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언제나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만약 시를 안 썼더라면 어땠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시를 쓰지 않았더라면 운동을 했을 것 같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은 운동을 그렇게 썩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곳에 있던 동료들이 그래도 자신은 시를 썼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런가. 시를 몰랐다면, 시의 재미를 정말 몰랐다면 나는 아예 다른 일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은 시의 재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시 같은 것을, 시다운 것을, 시를 계속해서 찾고 있다. 이 과정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면 솔직히 거짓말이다. 그러나 내게 시가 오고 있다. 그리고 나도 여전히 시에게로 가고 있다. 앞으로도 쭉 그러겠지. 우리는 중간에서 또 다시 만나겠지. 나는 여전히 그 행복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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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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