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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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회

무너져도 함께 쌓는 것.’

그런 것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다 무너지게 될지라도 함께 쌓고 싶다고, 특히 시 안에서는 혼자도 괜찮지만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고,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혼자 잘 사는 법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 노력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아마 죽기 직전까지도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사실 정말로 혼자 잘 살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주위에 딱히 의지할 만한 어른들, 의지해도 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렇게 생각하게 됐을 뿐이다. 어떤 무너짐이 와도 결국엔 혼자 극복해내야 한다는 것.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렇다고 한없이 외로웠던가? 생각해보면 또 그건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에 손을 내밀어준 사람도, 이미 무너진 후에 더 무너지지 않게 손을 꼭 잡아준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 따듯함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혼자 잘 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언제고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주위를 줄곧 맴돌았다.

현실에선 혼자 잘 사는 법을 그렇게 강구하면서 시에서는 왜 꼭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 할까? 시 안에서는 우는 이의 얼굴을 닦아주기도 하고, 식탁에 빙 둘러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눈이 내리는 것을 함께 바라보며 차가워진 서로의 손을 잡아주기도 한다. 무너져도 함께하자고 말하면서.

 

혼자 잘 사는 법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정말 혼자서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가지다가 왜 인간에겐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부터 혼자였으면 몰랐을 감정이, 누군가와 함께한 뒤에 아주 큰 파장처럼 밀려오는데도 굳이 누군가와 함께하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 대해서. 사실 혼자 그럭저럭 사는 법은 있을 것이다. 혼자보다 더 큰 문제는 살고 싶어 했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그게 뭔지도 모르지만 배울 수만 있다면 배우고 싶어 했다.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수영을 배울 때는 숨 쉬는 법부터 배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음파음파. 그렇게 숨을 쉬어보면 갑자기 숨 쉬는 것이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질 것이다. 마치 치과에서 입으로 숨을 쉬지 말고 코로 숨을 쉬라고 할 때 박자가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다음 차근차근 발차기를 배우고, 팔동작도 배운다. 한마디로 순서가 있다. 그런데 혼자 잘 사는 법, 혼자가 되어도 잘 사는 법엔 그런 게 없다. 순서 따윈 없다. 정해진 법칙도 없다. 어쩌다가 혼자 잘 살기도 하고, 어쩌다가 사랑하는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다시 함께 살아가기도 한다.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어쩌면 혼자 잘 사는 법이란 혼자 잘 살지 못했던 날들을 발판 삼아 견디는 것 아닐까.

조금씩 무뎌지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순서라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혼자 잘 사는 법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래야만 나를 지키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함께 마트에 가 장을 보는 것. 사랑하는 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다 사서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것. 함께 집안일을 하고, 함께 이야기를 하다 스르륵 잠에 드는 것. 잠에 든지도 모르게 생각 없이 고통 없이 잠에 빠지는 것. 그런 것을 원했다. 시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러니까 사실 나는 언제나 함께 잘 살고 싶어 했다. 그것을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간절히 원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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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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