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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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꿈에 나와 내게 사랑이 뭐냐는 질문을 했다. 글쎄. 사랑이 뭘까? 나는 꿈속에서도, 그 장면이 꿈인 걸 알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물을 담듯이 두 손을 모아 그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내 사랑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내밀어보았다. 두 손에 물이 담겨 있었던가 아니면 아무것도 없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걸 물은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해변 옆에서 그런 생각을 하다가 꿈에서 깼다. 하나 기억나는 건 질문을 한 사람이 분명 내 손을 봤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시가 첫 시집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에 수록된 영화와 해변이라는 시다. 영화와 해변은 사랑이 뭐냐는 질문에 두 손을 내밀어 보이는, 검정과 흰색 사이에서 푸른빛이 쏟아지는 곳을 발견하는 시다. 사랑을 발견하는 순간을 좋아해서 그런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배제하고 시를 쓸 순 없는 것 같다. 사랑에 관해 쓴 또 다른 시구를 꼽아본다면 아무래도 사랑만 남은 사랑 시사랑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고 싶어서라는 구절이 아닐까 싶다.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아마도 사랑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의 신중함을 좋아했던 것 같다. 최근에는 계간 문학과 사회2023년 여름호에 발표한 영원성에서 이렇게 썼다. “많은 인파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에 찾을 수 있다고// 너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그 사람을 한 번에 발견할 수 있는,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그런 순간을 좋아한다.

사랑 시를 많이 쓰는 건가? 아니면 사랑 없이는 세계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인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무어라 명확하게 답을 내놓기 어렵지만 내게 사랑은 보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잘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무언가 필요하지는 않은지, 불편하지는 않은지 두루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느 부분이 불편한지 바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종종 강연 때 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 내게 시는 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뚫어지게 살펴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니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시는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대상을 한참 바라보게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언가를 알아차린다는 점에서 사랑과 시는 닮았다.

내게 사랑 하면 잊히지 않는 일화가 하나 있다. 석사과정에 재학 중일 때 아버지가 일 때문에 서울로 올라오신 적이 있었다. 많이 바쁘냐? 라는 질문에 무심하게 그렇다고, 얼굴 보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그날 나는 아주 중요한 다른 일정이 있었다. 아버지는 어차피 두 시간 후에 기차를 타고 본가로 내려가야 하니 괜찮다고 했다. 잠깐 내 집에 들러 먹을 것만 놓고 가겠다고 했다. 그날 밤 피곤한 상태로 집에 들어선 나는 현관에서 한참 동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로부터 며칠 전 암막 커튼이 천장의 무게를 못 이겨 떨어진 사건이 있었다. 지나가는 말로 아버지에게 암막 커튼이 떨어졌다고 말했었는데 집에 와보니 암막 커튼은 언제 떨어졌냐는 듯이 제대로 달려 있었다. 암막 커튼이라 무게도 있었을 테고, 복층이라 혼자서 달기도 힘들었을 텐데. 아마도 아버지에겐 그걸 달아주고 가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을 것이다. 혼자 커튼을 달면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종종 그날을 떠올려보곤 한다.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한없이 미워할 수는 없다. 미워하더라도 용서를 하게 된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적당히 함께 용서를 해나간다. 그런 상황 속에서 또 다른 사랑을 배운다. 사랑과 용기가 공존할 때 더 큰 사랑이 오는 그런 순간을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배우고 있다.

시를 가끔 미워하지만 한없이 미워할 수는 없다. 미운 순간이 있더라도 용서해야 한다. 시는 쓸 때마다 늘 사랑과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시에게서 많이 배운다. 내가 배운 사랑을 시 세계에서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그건 내가 시를 쓰면서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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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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