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들 땐 운세 앞으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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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회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아침부터 눈을 뜨자마자 이상한 기분이 드는, 물속에 오래 잠겨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날. 그럴 때는 유독 더 침대를 벗어나기 어렵거나 천장을 오랫동안 쳐다본 후에야 몸을 일으킬 수 있다(사실 약간 변명일 수도……). 그리고 생각한다. 요즘 나 우울하구나. 그렇다. 우울이 찾아온 것이다. 우울은 예고 없이 늘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어떻게 해야 할까? 스무 살 초반에 비해 서른을 앞두고 있는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로 우울을 받아들일 줄 안다는 것이다. 스무 살 땐 우울이 오면 우울이 온지도 모른 채 가만히 있었다. 이 기분은 뭘까? 심지어 우울을 부정하며 괜찮다고, 내가 무슨 우울이냐고 말하며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학교에 갔다. 그러나 지금은 우울이 찾아오는 순간을 기가 막히게 안다. 지금 나 우울하구나! 그것을 인정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모르고 하루는 시작하는 건 꽤 큰 차이가 있다. 어쩌면 이제는 우울의 강도까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우울, 조금 큰 우울, 완전 큰 우울(사실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우울이 찾아올 땐, 그러니까 삶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땐 운세를 찾게 된다. 다운받은 앱을 들어가서 확인해보기도 하고, 포털 사이트에 생년월일을 넣어 확인해보기도 한다. 어떤 운세 풀이에서는 오늘 기운이 좋지 않으니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한다. 또 다른 운세 풀이에서는 무엇을 해도 성공할 날이라고 어떤 것이든 도전하기 좋은 날이라고 한다. 운세 풀이가 서로 다른 날에는 괜히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진다. 운세 풀이에는 가끔 말이 안 되는 것들이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황 씨를 조심하라든가. 선배에게 잘해야 한다든가. 내 주변엔 황 씨도 없고, 선배도 많지 않지만 있다면 원래 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날엔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한다. 운세가 나의 사회생활까지도 챙겨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누굴 만나야 할까? 또 다른 어떤 날엔 특정인을 조심하라고 한다. 특정인은 학교에 있을까. 지하철일까. 아니면 일하는 곳에 있을까. 그런 조언을 들으면 괜히 신경이 곤두서 있다. 사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안 그래도 몸도 마음도 힘든데 여기서 더 나빠지기 싫으니까.

운세 풀이에는 재밌는 표현들도 많다. 바쁘게 이동할 수도 있으니 신발을 편하게 신으라거나, 왼손은 모르게 오른손으로 일을 하라거나.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나부끼는 하루. 힘차게 흐르던 강물이 힘이 약해져 작아지는 하루. 급히 먹는 밥에 목이 멜 수도 있는 하루. 어쩌면 꽤 시적인 문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힘들 땐 뭐라도 믿고 싶어진다. 그래서 운세 앞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좋지 않더라도 내일이나 모레 운이 100%라면 오늘과 내일 조금 더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완벽히 그 말을 믿고 안 믿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라도 믿을 수 있다는 그 마음이 중요하다. 내가 나 자신을 믿지 않아서 운세를 보기보단 내가 가진 믿음에 더 큰 믿음이 쌓이길 바라서 운세를 보는 것이다.

내가 가진 믿음에 더 큰 믿음이 쌓이길 바랄 때, 나는 운세를 보기도 하지만 시집을 펼치기도 한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더라도 우선 읽는다. 읽다보면 어느 문장에, 어느 한 장면에 머무를 때가 있다. 나는 그곳에 최대한 오래 머물고 싶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한 오래 있다가 현실로 돌아갔을 땐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실 시를 읽으면 대개는 더 우울해진다. 그래서 시라는 게 참 신기하다. 분명 우울의 끝을, 바닥을 보고 온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게 위로가 된다. 시가 머리에, 명치에, 손끝에, 발끝에 오래 머물러 있다는 것. 그 시를 손에 오래 쥐고 잠을 자기도 한다는 것. 자고 일어나면 분명 조금은 나아진다는 것. 그렇게 위로를 받는다는 것.

우울이 찾아왔다는 걸 안다고 해서 그걸 해결할 방법을 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왔구나, 받아들이며 내 할 일을 한다. 우울이 찾아와도 시 쓰는 일을 피할 순 없으니까, 그저 시 안에 나오는 화자만큼은 조금 덜 우울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시를 읽는 것 못지않게, 시를 쓰는 일 또한 내게는 더 큰 믿음을 쌓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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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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