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에 관한 이야기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34 회

내가 자신 있는 것 중 하나는 기억력이다. 아니 이제 기억력이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해야 한다. 요즘엔 한 달 전에 있었던 일도 헷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인물들과 장면들이 있다. 나에게 어떻게든 상처를 줬던 사람과 그 반대로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생각해보니 인연이란 게 둘 중 하나이긴 하다). 만난 기간과는 딱히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전자는 뿌연 안개 속에서 안개가 걷힌 순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 같은 것이라면 후자는 선명한 기억 속에서 뿌옇게 흐려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전자는 별로 기억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그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살아가면서 친절한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로 행운이다. 어떠한 대가도 없이 베풀어지는 친절과 호의. 그건 낯선 타인에 대한 벽을 한순간에 허물어지게 하기도 한다(물론 이 벽 자체를 조심해야 할 순간이 있지만 말이다).

한 달 전 그러니까 여름 방학 때 광양의 한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가는 길이 어려워 긴장하고 있던 찰나에 엎친 데 덮친 격 휴대폰으로 찾아본 버스 정보와 실제 버스 정보까지 다른 것이 아닌가. 겨우 버스를 타서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찾아보고 있는데 한 할머니께서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았다. 버스에는 똑같은 파마와 비슷한 옷을 입은, 뒷모습을 정말로 구별하기가 어려운 할머니들이 여섯 분 정도 앉아 계셨다. 말을 건 할머니께 목적지를 말하니 할머니는 자신이 알려주겠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된다고 말하셨다. 무엇보다 버스 기사님께서 큰 목소리로 그곳에 가려면 ○○아파트역에서 내리면 되는데 그건 자신이 알려주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셨다. 버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긴장이 확 풀렸다. 가는 내내 앞으로 메고 있던 가방을 잠시나마 옆 좌석에 편히 둘 수 있었다.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지자 너나할 것 없이 여기라고 말해주셨다. 덕분에 나는 내려야 할 역에서 잘 내려 편히 고등학교로 이동할 수 있었다. 물론 내리면서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강연을 다 마치고 나니, 정말로 긴장이 다 풀리고 나니 그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는, 또 다시 만나기도 어려운 사람들이지만 말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자주 안 쓰던 은행 어플에 부득이하게 접속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비밀번호가 생각나질 않는 것이다. 내가 주로 쓰는 비밀번호는 세 개 정도 되는데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일까? 스무 살 때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어려운 비밀번호를 설정했을까? 결국 나는 다섯 번의 시도를 모두 실패하고 은행에 직접 찾아가 비밀번호를 새로 설정해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방은행이라서 서울에 지점이 많이 없었다는 것이었다(아마도 두 군데 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때 스무 살 초반이었기 때문에 약간은 낯설고 무서운 마음으로 은행을 찾아 갈 수밖에 없었다. 계좌를 다시 만들고,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다시 서류를 작성할 때 사실 이런 게 너무 무섭다고, 돈과 숫자 앞에선 자꾸만 작아지는 것 같다고 말하니 은행원 선생님께서는 스무 살 초반이라 그런다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괜찮다고 점차 익숙해질 거라고 말해주셨다. 별 말이 아닐 수 있지만 나는 그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내가 지레 겁을 먹고 무서워하기만 한 것은 아닐까. 왠지 그걸 들킨 것 같아서 조금 민망했지만 생각해보니 당연한 말이었다.

기억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내게 친절했던 모든 이들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짧게 스쳐간 인연도,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인연도 기억할 만한 사람들은 잊고 싶지 않는 것 같다. 짧은 순간들이 평생을 만들고, 우리는 그 평생 속에 머무르기도 하니까.

 

몇 년 전에 태국의 한 공익 광고를 본 적이 있었다. 한 남성이 길을 가다 친절을 베푸는, 이를테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그냥 못 지나가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한 공익 광고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걸어가면서 화분에 물을 주고, 모르는 개와 함께 밥을 먹고, 절실히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은 돈을 건네주기도 한다. 그는 가는 곳마다 친절을 베푼다. 이러한 친절은 또 다른 친절을 낳고 친절은 점점 부풀어진다. 물론 그 친절은 어딘가에서 끊길 수 있다. 그러나 광고에서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광고는 그가 활짝 웃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하는 이 광고는 어떻게 보면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환상이 실제로 일어났으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많은 이들이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몇 년 전에 보았던 광고인데 최근 SNS에서 또 다시 발견했다. 다른 사람의 반응이 궁금하여 댓글을 보았는데, 친절과 선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주였으나 간혹 가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요즘 같은 세상에는 너무나 환상적인 이야기라는 댓글이 있기도 했다. 나는 왜 이 광고에서 자꾸만 멈추게 되는지, 자꾸만 오래 머물게 되는지, 반가운 마음과 무거운 마음이 동시에 드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아직도 어쩌면 여전히 세상에 화날 일이 너무 많다. 그래도 아직 따듯함이 많았으면 좋겠다. 안일하게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무겁게 따듯함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언제나 악당보다 영웅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나를 포함한 나의 친구들이 친절을 더 베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친절을 아직도 어쩌면 여전히 믿고만 싶어진다. 요즘엔 특히 더 말이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