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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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회

정말 모르겠어.”

이는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이다. 그러니까 정말 내 마음을 모르겠다. 혹 누군가 네가 너의 마음을 모르면 도대체 누가 아느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글쎄 그걸 아는 사람이 더 이상한 게 아닐까요? 라고 대답한 만큼 정말 모르겠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겐 조금 미안하다.) 본래 생각이 많고 복잡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도 있지만 명확하게 딱 하나를 내세울 만큼 나의 주장을 강력하게 피력해본 적도 많이 없는 것 같다.

 

잠시 어렸을 때로 돌아가 보자. 안타깝게도 초등학교 때를 돌아보면 내게 좋은 선생님은 없는 것 같다. 내게는 무서운 선생님들만 가득했기 때문에 나는 늘 큰마음을 먹고 발표를 했어야 했다. 아는 것 같아서 답을 말하면 틀렸기 때문에 혼이 났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면 그게 자랑은 아니라며 혼이 났다. 그러고 보니 혼난 기억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칭찬을 받은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체육시간이었다. 당시 또래 친구들보다 키가 컸으므로 체육을 곧잘 했던 나는 달리기를 1등한 적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아주 짧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왜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느냐고, 잘하는 걸 왜 숨겼느냐고 다그쳤다. 나는 그때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체육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주 짧게라도 칭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해도 그렇게 혼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나의 주장을 짧은 시간동안 명확하게 내세우지 못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혹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일까봐, 나의 선택이 실수일까 봐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나 다른 사람이 껴있는 문제라면 피해가 가지 않게 더더욱 조심스럽게 주장을 펼치게 된다. 과녁판으로 예를 들어보자. 정중앙에 어떠한 주장이 하나 놓여 있다고 치자. 최대한 영점을 맞춘 다음 쏘더라도 정중앙을 못 맞출 확률이 높다. 차근차근 천천히 생각하면서 점점 중앙으로 영점을 조준해본다. 생각해보면 중앙, 10점을 맞추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10점에 가까운 9점이 나의 주장이 될 가능성도 높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생각하고 답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매번 이런 치열한 생각을 통해 주장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순간에는 정말로 단호하게 그건 아니라고 바로 내뱉기도 한다.(그러나 이것도 이미 너무 많이 생각했거나 과거에 비슷한 경험으로 인해 대답을 빠르게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간혹 가다 속을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반면 너무 투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너 도대체 누구니? 육성으로 내뱉어 보기도 한다. 알 수 없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나를 포함한 인간이란 정말 무엇일까? 아직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한번쯤 게슈탈트 붕괴현상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용어를 알았을 때 거울을 보고 너는 누구니?”라고 자신의 얼굴을 보며 물어봤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지극히 일상적인 단어, 예를 들어 양말이라는 용어를 계속 반복하면서 양말이 순간적으로 낯설게 느껴진 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원래 알고 있는 단어를 계속 반복하면서 묘한 기분에 휩싸인 적이 있다면 그건 바로 게슈탈트 붕괴현상을 경험한 것이다.

 

무언가 무너진 느낌, 내가 알고 있는 대상이 전혀 아닌 느낌, 정말로 모르겠는 느낌. 나는 시에서 이런 느낌을 자주 받는다. 시는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한다. 철저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어떠한 사물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오랫동안 생각한다. 다 안다고 생각했을지라도 과녁판의 정중앙을 맞추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중앙을 맞추지 못한 상태에서 중앙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시 같다. 자꾸만 비껴나가면서, 자꾸만 이탈하면서 말이다. 어쩌다 한번 정중앙을 맞춘다고 하더라도 그 시가 옳게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럴 땐 새로운 과녁판을 가져와 본다. 쓰고 있으면서도 정말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정중앙을 향해 달려가 본다.

종종 시를 쓸 때 내 마음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시 안에 등장하는 화자나 대상을 뒤따라가 본다. 그들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알 수 없는 곳에 도착하기도 한다. 그게 나쁘지 않다. 아니 사실은 그게 정말로 좋다. 내가 처음 생각한 곳은 아니지만 도착한 곳은 내가 꼭 와야만 했던 세계인 것 같기도 하다.

 

모르겠다.” 중얼거리면서도 어디론가는 가고 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딘가에는 꼭 도착할 것이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그래도 어쩌겠어,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고, 길은 걸어가면 나오는데, 더 좋은 쪽으로 가고 있다고 믿어야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의 모름도 믿고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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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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