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같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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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시인 같다.”

그 말을 들으면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나 지금 혹시 너무 시인 같나? 시인 같은 게 뭐지? 너무 시인 같은 건 도대체 뭘까? 한참 생각해보게 된다.

 

종종 친구를 만나면 건너 아는 지인이 시를 좋아해서 그러는데 혹시 서명을 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받을 때가 있다. 그 누가 이런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당연히 된다고, 이쪽으로 모시겠다며 흔쾌히 승낙한다. 분명 처음 본 낯선 이름인데 이름을 적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적 친밀감이 생기는 것 같다.

 

올 초여름에 직장인 친구가 또 한 번 서명을 부탁했다. 다만 프리랜서와 직장인은 서로 시간을 맞추기가 정말 어려웠고, 약속이 꽤나 미뤄진 상태에서 친구가 답답했는지 자신의 집 비밀번호를 알려줄 테니 서명만하고 갈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니 집주인이 없는데 그 집에 가는 게 맞나? 그건 조금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할 때 친구가 이미 비밀번호를 알려주었고 나는 어느 순간 친구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친구의 집은 내가 다니는 테니스장 바로 위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운동 시간에 맞춰 15분 정도 일찍 나와 서명을 하고 운동을 하러 가면 딱 맞았다.

 

비록 집주인은 없었지만 친구의 집엔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나와 본지 4, 5년이 되었는데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고양이들은 경계심을 놓치지 않았다. 분명 오전에 올 사람이 없는데 주인이 아닌 사람이 들어와 두리번거리고 있었으니 꽤나 신기했을 것이다. 나는 고양이들이 더 놀랄까봐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친구는 현관문 앞 주방 쪽에 시집을 놓아두었다고 했다. 시집은 어렵지 않게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운동하러 간 김에 친구 집에 들른 것이라 펜을 따로 챙겨 갈 생각을 못했다. 나는 할 수 없이 신발을 벗으며 연신 고양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펜을 찾았다. 펜은 거실 식탁 쪽에 있었다. 펜만 들고 다시 조용히 현관문 쪽으로 가 약간 고개를 숙인 채 서명을 하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헛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했지만 친구 분께서 서명본을 받고 기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명을 다 마치고 나서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다음엔 맛있는 것을 사들고 오겠다고 말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들은 끝까지 경계심을 놓치지 않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문을 닫고 테니스장이 있는 지하 1층으로 향했다. 테니스를 마치고 오늘 있었던 일을 또 다른 친구에게 전해주었더니 집주인이 없는 집에서 서명만 하고 나오다니 정말 시인 같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또 다시 시인 같다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었다. 그렇다. 되게 시인처럼 서명하고 나온 것이었다. 도대체 시인이란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이런 귀한 경험도 하게 되는 것일까.

 

시인 같다.” 이 말은 어쩐지 누군가를 놀릴 때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조금 감성적이거나 따듯함이 묻어나오는 말투거나 조금 특이한 생각을 할 때 너 정말 시인 같구나라는 표현을 쓸 때가 있다. 더 나아가 무슨 이야기만 하면 반은 농담 반은 진담으로 역시 시인이다라고 말하며 엄지를 치켜세워주기도 한다. 묘하게 기분이 이상해진다고 해야 할까? 어쩐지 마냥 좋은 표현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시인 같다고 말하면 떠오르는 선배가 한 명 있다. 그 선배는 가방에 자신의 시집을 몇 권씩 들고 다니던 선배였다. 만약 시집이 나온다면 가방 속에 시집을 넣고 다닌 다음 누구라도 마주치면 전달해주는 게 좋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선배야말로 준비된 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의 가방에서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나오는 도라에몽의 가방처럼 시집이 계속해서 나오는 게 아닌가? 그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시인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선배 정말 시인 같아요라고 말해버렸다. 선배는 너도 곧 그렇게 될 거야라고 말했는데, 정말이었다. 어쩐지 그 말이 계속 맴돌아서 그런지 나도 시집이 나온 후엔 가방에 시집 두 권 정도는 넣고 다녔다. 혹시 몰라서, 정말 혹시 몰라서 말이다.

 

시인에 관해서 이야기하는데 친구네 집에 있던 고양이 두 마리가 떠오른다. 분명 주인은 아니고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누구더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도 낯선 내가 시인 같다고 생각했을까? 간식을 주면 착한 시인이라고 생각했을까? 궁금해졌다. 그날 밤 고양이 몇 마리를 안아주는 꿈을 꾸었는데 등을 쓰다듬어도 도망가질 않고 품 안으로 계속해서 들어왔다. 포근하고 행복했다. 그 표현이 딱 맞았을 것이다. 시인이란 이러한 기억을, 감촉을 계속 생각하다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닐까? 꿈에서조차 시를 생각하고, 시를 쓰는 사람. 깬 다음 내가 분명 아주 재밌는 시를 썼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네 라고 말하며 굉장히 아쉬워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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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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