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한복판에서 나만의 장소 찾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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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회

한강에는 재밌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누군가 앉아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다 강아지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돗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 주변을 반 바퀴 돌고 다시 돗자리에 누워 잠을 자는 사람도 있다. 평화롭다. 평화롭지 않은 상황도 한강에서는 모든 것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기도 하고, 애인과 피크닉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엎드려 책을 읽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기도, 누군가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한강에 가면 왜 이렇게 차분해질까.

낭만이란 이런 것일까? 사실 낭만에 대해 잘 모른다. 강이나 바다 근처에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근처에만 가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어쩌면 공포를 느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살아본 적이 없어서 낭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다를 보면 숨통이 트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그건 바다 안을 보고 말한 것이 아니라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순간을 보고 말한 것이 맞을 것이다. 사실 심해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우리가 아는 바다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니까. 아무튼 한강 또한 마찬가지다. 한강 안은 잘 모른다. 그저 한강 바깥에서,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안다. 그건 지극히 평화로워 보인다.

한강을 걷다 보면 돗자리 위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이 한 가족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마치 하나의 집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룸메이트나 가족 말이다. 돗자리끼리 각자의 영역이 명확한 것처럼 하나의 집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년 시절에는 큰 우산을 펼쳐놓고 얇은 이불을 우산 위로 덮은 뒤 그 안으로 들어가 우리 집이라고 하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우산을 소파 끄트머리에 반 정도 걸쳐놓으면 더 큰 집이 완성되어 여러 사람을 초대할 수 있었다. 내 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조용하고 더 사적인 나만의 장소가 필요했던 것 같다.

또 다른 나만의 장소는 옷장이었다. 등단작 축일을 본 독자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나는 옷장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했다. 단 문을 완전히 닫으면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기에 문을 약간 열어둔 상태의 옷장 안을 좋아했다. 옷장 안에서 나만의 세계를 펼치는 것이 좋았다. 당시 나니아 연대기의 시리즈 중 하나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감명 깊게 읽었던 터라 옷장 속에 있으면 자연스레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 믿었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게 좋았다. 그 빛은 햇빛에 가까운 노란색이었다가 전등에 가까운 주황색이었다가 이내 서서히 사라져갔다. 빛을 한참동안 보고 있으면 어느새 잠이 들곤 했다. 간혹 상상을 하는 건지 꿈을 꾸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어떤 때는 옷장 안에 한참동안 있어서 내가 정말 죽은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옷장 안에서 보았던 빛을 한참동안 잊고 있다가 우연히 지하철 안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 옷장 안에 자주 들어가 있던 아이는 이제 옷장 안에 들어가지 않지만 (크기상 들어갈 수도 없다.) 당산에서 망원, 망원에서 당산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을 때 한강을 지나가는 구간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그 구간은 나만 아는 장소가 아니다. 모두가 아는 장소이다. 하지만 특별하다. 분명 타인과 함께 있는데 혼자 있는 기분이 든다. 당장이라도 지하철 끝 칸으로 달려가면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그런 생각 속에서 잊고 있었던 빛을 발견한다. 해가 지고 있을 때 노란색과 주황빛으로 물든 한강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 빛은 어렸을 때 보았던 빛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옷장 틈 사이로 들어오던 빛이 지하철 창문 밖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 구간은 모두 조용하게 밖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한강이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무척이나 심심했을 것이다. 나는 그 빛을 보지 못했다면 분명 더 우울했을 것이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한강에 비친 빛을 보고 큰 위안을 얻었던 것처럼 자주 가진 않더라도 한강에 갔던 순간들을 모두 기억하는 걸 보면 한강은 나만의 장소가 맞다. 도심 한복판에서 나만의 장소를 찾았다고 한들 온전하게 나만의 장소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게 이런 곳이 없었더라면 서울에서의 삶은 더 우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기적으로 한강에 가야겠다. 주기적으로 빛을 봐야겠다. 어쩌면 그곳에서 낭만적인 요소를 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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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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