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멈추시오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25 회

생각을 멈추시오.

 

그렇게 말하면 생각을 멈추는 사람과 생각을 어떻게 멈추지? 라고 말하며 더욱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당연히 후자다. 휴일을 포함해 방학에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생각할 시간도 더 많아진다. 깊은 땅속에 묻혀 있는 고귀한 유물을 찾는 것처럼 나는 깊은 곳에 있는 생각 하나를 찾기 위해 오래된 흙을 조금씩 파낸다. 파내고 또 파내다 보면 내가 진짜로 원했던 생각 혹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생각 하나는 발견하게 된다. 그 생각은 주로 시로 이어진다.

 

연달아 폭염주의보가 이어지고 있다. 분명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요즘 들어 극악무도한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체력 때문인지 여름이 조금 버겁게 느껴진다. 최고기온 34도 이상 올라가게 되면 전 국민이 하던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물론 이 생각을 침대에 누워서 한다. 가끔 운동하는 날을 제외하면 마감이 있다는 핑계로 방학 내내 거의 집에만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폭염주의보 혹은 경보가 발효되었을 땐 자연스레 잠에서 깨게 된다. 깨고 나서 시간을 확인하고 물 한잔을 마신다. 물을 마시는 내내 정말 덥다고, 정말로 여름이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눕는다. 방 안쪽으로 들어온 햇살을 조금 더 만끽한다.

 

여름엔 창문을 조금씩 열어두게 된다. 커튼을 설치할까 생각만 하다 겨울은 다 지나가고 여름이 와버렸다. 지금은 창문에 커튼 봉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곳에 선물 받은 드림캐처를 달아두었다. 드림캐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만든 장신구로 악몽을 꾸지 않게 도와주고 좋은 꿈만 꾸게 해준다고 한다. 일종의 부적 같은 것이다. 효과가 뛰어난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기는 한다. 드림캐처가 움직일 때마다 곧 바람이 방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오겠다고 생각한다. 창문을 열어두면 그 틈 사이로 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름밤엔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한번은 나무 흔들리는 소리만 나고 주위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건너편에 있는 교회의 불빛이 우리 집 안쪽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때 그곳에 교회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조용해져야만 보이는 것들과 어두워져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이것이 시의 한 장면이 아니면 무엇인가 싶어 당장 메모장을 켜 적어두었다. (언젠가는 보여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여름밤엔 소란스러운 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소리, 누군가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소리, 한잔만 더 하고 가자는 소리,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 풀벌레가 계속해서 우는 소리 등. 문을 열면 더 크게 들리는 소리들이 반갑기도 하지만 조용한 것을 좋아해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다. 또 어떤 순간은 너무 고요해서 순간적으로 고독해지기도 하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사람 사는 것 같지도 않다는 엄마가 해준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람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의 끝에는 가끔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물론 그 생각을 바로 접을 때도 있지만……) 그러니까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을 찾고 싶은 것이다. 물론 나의 생각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도 귀 기울여서 듣고 싶은 것이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의 생각을 궁금해한다. 꼭 대단하고 특별한 생각이 아닐지라도 함께 본 영화의 어떤 장면이 가장 좋았는지, 좋아하는 음악은 어떤 이유로 좋아하게 되었는지, 무슨 음식을 가장 좋아하고 또 어떤 음식은 왜 싫어하게 되었는지 등등. 그러니까 여름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소리를 함께 듣고 싶은 사람, 드림캐처 밑에서 좋은 꿈을 꾸었으면 하는 사람 말이다. 어쩌면 내게 생각은 정확히 사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과 관찰하는 일을 나는 멈출 수가 없다.

 

꿈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혹은 내가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계속해서 생각한다. 간혹 기차 안에서 잠이 깬 순간부터 꿈이 시작되는 경우가 있는데, 다른 칸으로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많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단 한 명이다. 삽을 들고 탄 승객이었는데 그는 무엇을 찾으러 간다고만 말했다.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아마도 그의 옆에 있는 긴 삽과 그의 믿음직함에 순간적으로 매료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유물을, 나는 생각을 파려고 했겠지. 만약 잠에서 깬다면 나는 그 상황을 놓치지 않고 시로 쓰려고 메모장을 켜겠지. 물론 그는 사라지고 없겠지만…… 나는 끊임없이 그에 대해 생각하겠지. 물론 우리는 땅을 파지도 않았고, 기차에서 내릴 수도 없었다. 그저 긴 통로를 계속해서 걸었을 뿐이었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