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에 무엇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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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

며칠 전 한 낭독회에서 여름 계획이 있느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책을 정말 많이 읽고 정말 많이 쓰고 싶다고 대답했는데 사회자 분께서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놀 계획은 없는 것이냐고 다시 질문을 했다. 나는 그제야 아차 싶어서 황급히 있다고 말했다. 사실 있다고 말했지만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다. 생각해보니 놀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맞이하면 사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한 달 정도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간간이 시를 쓰고 책을 읽기는 하지만 나에게 휴식이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이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잘 놀아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노는 것과 쉬는 것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노는 것이라면 여행을 하고, 쉬는 것이라면 집에서 뒹굴거리다 영화를 보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SNS에서 몇 억을 주면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혼자 사는 게 가능 하느냐라는 질문이 떠돈 적이 있었다. 단 이 질문에는 조건이 있는데 그건 바로 아무런 전자기기 없이(노트북, 휴대폰, 아이패드 없이) 오직 책만 반입이 가능(종이와 연필도 가능)하다는 조건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능하다고 대답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휴대폰 없이는 조금 그렇다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이 질문을 보고 우선 책을 무엇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그게 뭔가 대단한 걸까? 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산속만 아니지 방학 때는 자주 집에 있으니까, 나로서는 질문이 참 재밌다는 생각보다 무엇이 문제지? 라는 생각부터 들었던 것 같다(물론 나도 휴대폰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보는 것을 좋아한다). 단 그렇게 해도 나에게는 몇 억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건 참으로 아쉬운 점이다. 오히려 책을 사느라 돈만 더 나가고 있다.

 

다들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낼까? 나만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건 아닐까? 모두가 재밌게 보내는 방법을 아는 것일까? 친구에게 어떻게 보낼 것인지 물어보았더니 친구는 올 여름에 해외여행을 갈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운동을 할 것이라고, 다른 친구는 오랫동안 미뤄왔던 장편 소설을 꼭 완성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지? 우선 제철 과일을 부지런히 먹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여름에는 당도가 높은 과일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과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시기를 놓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숭아, 수박, 참외, 포도, 자두 등. 그러니까 마음 같아선 과일이나 먹으며 간간이 시를 쓰고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또 무엇을 하면 좋을까? 만약 체력이 된다면 테니스 이외에 다른 운동을 배워보고 싶기도 하고, 여행을 갈 수 있다면 어디든 다녀오고 싶기도 하며, 무엇보다 너무 늦게 일어나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에게 여름방학 계획을 말했더니 친구는 내게 참 평범하지만 열심히 사는구나 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참 평범하지만 열심히 사는 삶, 나는 그것이 내가 여름방학 때 할 일이 아닐까 싶었다. 방학은 왜 이렇게 시간이 잘 가는 것일까?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까닥 잘못하면 방학이 벌써 끝나 우울하다고 적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번 방학에도 한 게 없다고 속상해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름에 어떤 것을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 보내도록 노력하겠지. 작지만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며 앞으로 다가올 여름의 모든 풍경을, 초록빛과 청량함을, 매미와 빗소리를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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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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