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한 불효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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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회

왜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부모님 생각이 나는 걸까? 이상하다. 나는 어중간한 불효자식인데. 어중간한 불효자식이란 부모님을 사랑하면서도 부모님을 완전히 챙길 수 없는(혹은 챙기지 못하거나 챙기지 않는) 자식들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부모님을 완전히 사랑할 수 없는, 아무튼 효자는 아니라는 소리다.

 

나는 일찍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고 싶어 했다. 스무 살 때 꿈에 그리던 서울로 오게 되었지만 혼자 사는 삶은 좋다가도 어려웠고, 어렵다가도 한없이 좋았다. 서울에서 혼자 자던 날,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 동안 울었다. 혼자 남겨졌다는 슬픔, 앞으로 무엇이든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무거움, 이불 안은 이곳이 서울인지 모를 만큼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이불을 치우고 내 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면 부모님이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불 밖은 6평 남짓한 나의 자취방이었다. 침대와 책상이 바로 붙어 있는, 책상에서 공부도 하고, 밥도 먹는, 신입생이라고 신나서 산 옷 몇 가지가 행거에 걸려 있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점차 서울 생활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학교 과제가 많다는 이유로, 과제가 다 끝나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논다는 이유로 부모님과 연락을 잘 하지 못했다. 혼자는 참 편하다.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서 원하는 시간에 밥을 먹고, 원하는 시간에 공부와 일을 하며, 원하는 시간에 친구들을 만나고 원하는 시간에 부모님께 연락을 드릴 수 있었다. 약간은 의무적으로 전화를 하게 될 때 나는 정말로 내 자신이 불효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죄책감과 약간의 편안함이 뒤섞인 상태로 나는 혼자 사는 생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렸다.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던 날, 문득 엄마가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본 적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사실은 여행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 혼자만 호의호식하고 있는 것 같은,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음에 함께 오자고 했으나 엄마는 이를 단번에 거절했다. 엄마는 내게 그런 좋은 곳은 친구들이랑 가는 것이라고 가서 재밌게 놀다가 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화가 났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으나 정말로 화를 낼 것만 같아서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았다.

 

좋은 곳에 가면 부모님 생각이 났다. 정말 맛있는 것을 먹으면 부모님 생각이 더 났다. 음식 옆에 시가라고 써진 음식들은 대체로 비싸다. 나는 가격표에 시가라고 써진 대게를 먹었을 때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먹지 않지만) 맛살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비싼 건 정말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조금 슬퍼졌다. 우리 부모님도 그런 생각을 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항상 밥 잘 챙겨 먹어라라는 문자를 받는다. 열에 아홉은 그냥 잘 챙겨 먹는다고 말하는데 그날은 아니었다. 그날은 정말로 잘 먹었다고, 정말로 맛있었다고 답장을 보냈다. 여전히 좋은 것을, 맛있는 것을 함께 먹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좋은 곳에 가도, 맛있는 것을 먹어도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 부모님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나는 그 기쁨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는데 부모님에게는 그저 집과 집밥이 최고일 때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마음이 정말로 복잡해진다.

 

가족은 우스갯소리로 세 마디 이상 넘어가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한다. 가족이란 정말 무엇일까 싶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모두 적정 거리를 잘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적당히 안부를 묻고 적당히 뒤로 빠지며 적당히 소식을 던져주는,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그런 관계말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내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완전히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어중간한불효자식이다. 그저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부모와 자신 간의 도리에 있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여전히 같이 먹고 싶고, 좋은 곳에 가면 여전히 함께 가고 싶다. 다만 나는 부모님을 완전히 돌볼 수 있는 능력도 없고 그럴 힘도 없을뿐더러 그럴 용기도 없다. 하지만 부모님을 사랑한다. 그래서 괴롭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와 맞지 않아서 괴롭다. 아마도 영원히 이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겠지. 그렇게 평생 어중간한 불효자식으로 살아가겠지. 언젠간 후회할 날도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쉽지가 않다. 부모님께 상처받지 않고 사랑만 받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효자가 되기란 정말로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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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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