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려다가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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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회

원래대로라면 나는 올해 서른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만 나이의 통일로 인해 서른이 될 뻔하다 다시 스물아홉 살이 되었다. 역시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나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중요한 건 계획이란 별로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계획형/통제형 인간에겐 아주 슬픈 이야기다.) 제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놓았다고 하더라도 삶에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계속 끼어들기 마련이다.

 

나는 서른이 되면 정말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아니 정말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서른이 되면 안정적일 줄 알았다. 이는 조금 슬픈 이야기다. 물론 이십대 초반보다는 안정적이긴 하지만……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로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프리랜서의 삶이란 정말로 험난하고 정말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처럼 불확실하다.

 

종종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그래도 너는 너 하고 싶은 일을 해서 괜찮지 않아? 좋지 않아?”라고.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한다. 그러다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려진 외침이 나오기 시작한다. “좋지…… 좋은데! 그게 전부가 아니야. 난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았어!”라고 말이다. 그래. 이거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킨다고 해서 정말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느냐고 묻는다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모든 게 좋아 보이는 상황이더라도 그러니까 어떠한 경우에도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니까.

 

서른이 되면 뷰가 좋은 집에서 아주 좋은 햇살을 받으며 일어나자마자 이불 정리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내린 뒤 노트북을 켜서 멋있게 원고를 쓸 줄 알았다. (이런 상상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던 이십대 초중반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아래와 같다.

 

일단 일어나자마자 어휴 힘들다라고 속으로 두 번 정도 외친 다음 침대에서 더 뒹굴거린다. 그래도 일인데 어쩌겠어, 하며 몸을 일으켜 노트북 앞으로 간다. 한글 파일을 켜본다. 커서가 깜빡이는 것을 보고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본다. 젠장. 한 줄도 못 썼다. 커피를 마셔본다. ‘힘을 주세요. 제발 제게 힘을 주세요라고 외쳐본다. 잠시 멍을 때리다 어떤 장면이 불현듯 떠오르게 되고 이걸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속으로 생각한다. ‘시작이 반이다는 무슨 시작이 한 줄이다라고. 갈 길이 멀다. 부지런히 머리를 굴려야 한다. ‘잠시 햇살 좀 받아볼까하고 창가 쪽으로 가본다. ‘다른 사람들은 뭐가 그리 재밌을까?’ 생각한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쓴다. 이내 못 참고 침대로 가 다시 눕는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한다. ‘아니야. 그래도 이렇게 망할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며 다시 일어선다. 무어라 써진 화면을 본다. 마저 1연을 완성한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생각하며 밥을 먹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게 뭐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지?’ 생각한다. 생각하다가 이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없다고 정신 차리자고 말한다. 어떻게든 시의 형태를 만들어본다. 완성을 시킨다. 빠르게 퇴고를 해본다. 좋은지 안 좋은지 이젠 정말 감도 안 오는 것 같다. 동료의 도움이 필요하다. (중도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이 있는데 딱 그 격이다. 나는 나보다 동료의 시선을 아주 신뢰한다.) 동료가 괜찮다고 하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진다. 시를 다시 살펴본다. 오늘 하루가 아주 헛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울지 않는 게 아니라 울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주어진 일에 책임을 져야한다. 작품이 별로든 아니든 책임을 져야한다. 나는 그게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다 망했다고 생각해서 드러누울지라도 30분 쉬고 아니야 아직 망하지 않았어라고 생각하며 나는 결국 해내고 만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몸을 일으키는 것이다.

 

만 나이 통일로 스물아홉 살이 되었지만 마음가짐은 이미 서른이다. (물론 나의 체력 또한 그러하다.) 아직 완전한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실 죽을 때까지 완전한 어른이 아닐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한다.

 

서른을 앞두고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모르겠는 상태로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로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답을 꼭 내려야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방향의 키 정도는, 그러니까 내가 타고 있는 배에 노를 젓는다면 방향 정도는 생각해야 하리라…….

나는 그 노를 쥐고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혹은 정면으로 갈 수 있다. 어디로 갈지 결정해야 한다. 어디를 고르든 어떤 장애물이 나타날지는 정말 모르는 것이다. 삶에는 여전히 예기치 못한 변수가 끼어들기 때문에……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 모르는 일에 미리 걱정하지 말자고 새해 다짐에(4회 참고) 적어놓았으니 나는 주어진 일을 마쳐야 한다. 그래도 가야 한다. 내가 타고 있는 배와 내가 들고 있는 노와 그리고 나를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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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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