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눈치를 조금 많이 살피는 편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16 회

재율 씨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조금 많이 살피는 편이에요.

 

상담을 할 때 들었던 말 중 하나이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선생님에게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마음 한구석이 쿵 하고 내려앉은 느낌이 들었다. 상담을 할 때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해야한다. 사실 그것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 부모님과 함께 꽃구경을 갔던 순간, 처음 자전거를 배웠던 순간, 놀이터에서 나의 이름을 크게 불러주던 순간, 시장에서 손을 놓쳤던 순간, 그래서 그 자리에 한참 서 있었던 순간, 결국은 나를 찾고 꽉 안아주었던 순간, 좋았던 기억은 선명하게 남는다. 물론 그렇지 않았던 기억도 선명하게 남는다는 게 문제였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상담을 할 때 6살 정도로 되어 보이는 나와 나란히 앉아 있기 시작했다. 상담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면 나는 6살의 나를 쳐다보면서 그때 어땠는지 되묻는다. 그럼 6살의 나는 잘 모르겠어요” “슬펐던 것 같아요” “무서웠던 것 같기도 해요와 같은 말을 내뱉는다. 나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 선생님께 그대로 전달한다. 나는 여섯 살의 내가 말을 내뱉을수록, 혼란스러워할수록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쉽게 연민할 수도, 쉽게 동정할 수도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조금 늦게 들어준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저 묵묵히 들어준다.

 

언제부터였을까? 타인의 눈치를 처음 살피기 시작한 때가, 나는 최초의 기억을 더듬어 그때로 돌아가본다. 유치원에 가기 전, TV를 보며 아침밥을 먹고 있었던 때였다. 당시 숟가락질이 서툴렀던 나는 그만 국물을 이불에 흘리고 만다. 평소 깨끗함을 강조하셨던 어머니는 언성을 높이며 똑바로 앉아서 잘 먹으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그 순간부터 식사 시간 내내 어머니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었다(어쩌면 중학생 때까지도 식사 시간 내내 눈치를 살폈을 수도……). 나에게 식사 시간은 맛있는 것을 먹는 시간이기보다 무언가 흘리면 안 된다는 강박이 존재하던 시간이었다. 으레 어린아이가 그렇듯 싫어하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었고, 밥은 최대한 깨끗하게, 국은 최대한 가까이에서 먹어야 하는, 조금은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 덕분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나는 여전히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덕분에 젓가락질과 숟가락질을 아주 잘하는 어른으로 컸으며, 타인이 무언가를 흘려도 오히려 그러려니 하는 조금은 여유가 있는 어른으로 컸다. 6살의 나는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처음으로 불편했어요라고 말해본다.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맑은 표정으로, 그동안 숨겨왔던 감정을 온전히 얼굴에 드러내면서 말이다. 그랬구나, 그게 많이 서러웠겠구나라고 말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여섯 살의 나와 마주해본다.

 

타인의 눈치를 많이 살핀다는 것은 그만큼 섬세하다는 것이에요.

 

상담이 끝나갈 때쯤에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슬프기도 했지만 위로가 되는 말이기도 했다. 어쩌면 섬세하다는 것은 그만큼 슬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섬세하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섬세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유가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섬세함의 시초를 누군가 알아봐주길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