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학생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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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회

며칠 전 한 선생님으로부터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연 제의를 받았다. 학생들에게 시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과 시를 짓는 법을 알려주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나 흔쾌히 수락한 것과는 다르게 갑자기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이쯤 되면 아시겠지만……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다). 고등학생이라…… (사실 그걸 떠나서 어떤 집단에 소속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여러모로 걱정이 되었다). 나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다. 처음 쓴 시가 기억이 나는데, 비가 오는 날 버려진 우산에 관한 시였다. 어렴풋하게 빗줄기를 타고 흐르는 물결에 관해 썼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백일장에 나갔으나 상을 많이 받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1, 장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 글을 쓰는 친구들 사이에선 장원이 있어야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들이 오고 갔었다. 한번은 모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상금이 100만 원이어서 나는 학교 단상 앞에 나가 상을 받았어야 했다. 당시 고등학생이 한번에 100만 원을 벌어오는 일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뒤에 서 있던 친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교장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고, 내용을 말할 때도 짓궂은 친구들은 야 시인이다 시인. 커서 시인 될 거냐!”라며 비아냥거렸다. 나는 그 순간이 싫었다. 정확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서 상을 받았는데 왜 이렇게 부끄러워해야 하나 싶었다. 나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단상에서 내려와 우리 반에 합류했다. 그때 어디선가 쟤는 시 써서 대학간대” “그럼 커서 뭐 하는데?” “나야, 모르지와 같은 말들을 들었다. 나는 그 순간을 모른 척했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시를 쓴다고 하면 일단 이상하게 보았고, 두 번째론 그럼 정말 시인이 되는 거냐고 물었고, 세 번째론 시를 써서 대학에 갈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에게 가장 큰 화두는 대학이었으니까 이상한 일도 딱히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나는 시를 써서 대학에 갔고 정말로 시인이 되었다.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 시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재밌는 것이라고, 천천히 접근해보자고 말해야 하나. 여러모로 고민이 되었다.

 

강연 제의를 받은 그날 밤 신기하게도 그 고등학교에 가는 꿈을 꿨다. 기차를 타고 어느 역에 내려 마을버스를 타야만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정류장에는 나 말고 두어 명 정도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버스는 특이하게도 크기가 관광버스만 했다. 기사님은 마치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저 끝에 가서 앉으라며 손짓을 했다. 나는 맨 끝 가운데 자리에서 옆 사람들 사이에 거의 껴 있다시피 앉아 가게 되었다. 버스는 마을 곳곳을 들리면서 언덕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가끔 창문 너머로 기차와 바다가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아주 좋은 학교구나, 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버스가 언덕을 넘어가기 위해 힘껏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나의 몸은 붕 떴고 거의 90도로 꺾인 버스에서 이대로 도로로 내려간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짧은 순간 파노라마처럼 창문 너머로 나의 삶이 스쳐 지나갔다. 유치원 학사모를 쓰던 날부터 시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 마지막 창문을 보았을 때 버스가 도로에 부딪힌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다만 이상했던 건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종착역에 있는 고등학교에 내려 정문으로 향했다. 선생님 세 분이 마중을 나오셨고, 세 시간 정도 수업을 해주시면 된다고 했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인사를 했고,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나는 칠판에 시란 무엇인가를 적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꿈이었다. 실제로 일어난 상황이 아니라 꿈이었다. 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단 한명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다고, 나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빨개지고 입안 가득 사탕을 넣은 것처럼 발음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나의 사담을 펼쳐놓기 시작했다. 살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를 주섬주섬 다 꺼냈던 것 같다. 웃긴 건 그중 반은 내 사담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능청스럽게 세 시간 수업인데 사담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이제 그만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그러지 말고 더 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교실은 순간적으로 시끌벅적해지고 나는 꿈속에서 이건 정말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현실이 아닐 것이라고, 버스를 탈 때부터 알아보았다고, 현실은 정말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조용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시끄럽게 떠드는 와중에 한 학생이 시에 관해 질문을 하고 싶다고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나는 너무 놀라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 학생은 윤동주 선생님의 시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그 학생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학생이 다음 말을 꺼내자마자 나는 눈을 떠버렸다. 그렇다. 나는 꿈에서 깨버렸다. 그 학생은 조용히 손을 들었지만 꽤 밝아 보였다. 뿔테 안경을 썼고 머리를 묶고 창가 쪽에 앉아 있었다. 나는 손을 든 그 학생이 계속 신경 쓰였다. 그 학생이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영영 알 수 없겠지만 문득 떠오른 생각으론 그 학생이 마치 나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강연에 대한 노파심 때문에 미리 겁을 먹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 꿈속에 나온 학생이 정말로 나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학생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 종일 마음이 이상했다.

 

(강의 제안을 받은 학교와 꿈에 나온 학교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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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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