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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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회

나는 구석을 좋아한다. 혼자 방에 있을 때도, 밖으로 나가 어떤 가게에 들어갈 때도 구석이 좋다. 어떤 이는 가운데가 구석보다 시야가 트여 있어서 더 좋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시야가 트여 있기 때문에 더 신경 쓸 것이 많다고 해야 할까? 꼭 그러한 이유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나는 구석을 좋아한다. 밖으로 나와 어떤 가게에 들어가게 되면 무어라 생각할 틈도 없이 자연스레 내 몸은 구석을 향해 가고 있다.

 

저 끝이 어떨까?

아니면 창가 쪽은 어때?

역시나 제일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구석진 자리이다. 그다음엔 그 옆에, 그다음엔 구석진 자리 앞에, 그러다 가운데 자리만 남아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앉는 경우도 있지만) 다시 나오고 싶어진다. 괜찮지만 괜찮지 않은 느낌. 그러니까 식당 한가운데서 밥을 먹게 되면 몸이 붕 떠 있는 느낌이 든다. 왠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고, 빨리 먹고 나가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이런 성향은 타고난 기질이거나 어렸을 때 지내온 환경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던데,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로 가운데보단 끝이 좋았다. 사람이 있든 없든 놀이터에서도, 운동장에서도, 교실에서도 끝자리가 좋았다. 놀이터에서도 흔들 말 다섯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면 끝에서 타는, 운동장에서도 농구 골대가 세 개 있다면 가운데에선 절대 농구를 하지 않는, 교실에서도 2분단과 3분단 보다 1분단과 4분단 끝자리를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겁이 많아서 그랬던 것일까? 그땐 단순히 낯을 가려서, 그저 사람들이 신경이 쓰여서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안에서든 밖에서든 안정감을 얻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사방이 뚫려 있으면 위험요소가 너무 많아서 생각 또한 많아졌고 사방 중 한 군데라도 막혀 있으면 안정감을 얻었던 것이다(그 당시 나는 내 팔은 두 개인데 사방에서 무언가가 날아오면 어떡하지? 라는 특이한 생각을 자주 했었다). 나에게는 벽이나 창문, 모서리, 구석진 곳이 안정감을 주었다. 기댈 수 있다는 것. 언제든 등을 대면 받쳐줄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좋았다.

 

누군가 내게 어떤 집을 원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바로 욕조가 있는 집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적당히 넓은 집, 공간 분리가 확실히 되는 집, 해가 잘 들어오는 집, 수납장이 많은 집 등등. 다 좋았지만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은 욕조가 있는 집이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욕조에 기대어 생각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조가 있는 집에 살고 싶은 이유는 기댈 수 있어서다. 내게 욕조가 있다는 것은 방이 아닌, 방의 구석이 아닌 다른 한구석에서 생각할 곳이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언제쯤 욕조가 있는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여전히 그런 생각을 종종 방 한구석에 앉아 해본다.

구석이라는 단어를 사전에 검색해보면 첫 번째로는 모퉁이의 안쪽, 두 번째로는 마음이나 사물의 한 부분, 세 번째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치우친 곳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첫 번째 정의만 주로 생각했었는데 문득 두 번째 정의를 떠올려보았다.

 

보기와는 다르게 강한 구석이 있어.

자기 자신을 믿는 구석이 있어.

나는 왜 이런 말들을 좋아할까? 저런 말들을 들으면 정말 마음 한구석에 나도 모르는 선물상자가 놓여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마음은 구석으로 가야만 발견되기도 했다. 나조차도 상자가 있는지 몰라서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말들로 인해 다시 한번 열어볼 수 있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구석이 좋다. 첫 번째 정의의 구석도 좋고, 두 번째 정의의 구석도 좋다. 기댈 수 있어서 좋은 구석은 내 마음 한구석에 있는 것처럼 나를 안전하게, 또 평온하게 만들어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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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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