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상황과 문학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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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시대가 정치적·사회적으로 고난을 겪을 때, 문학은 반드시 그 고난으로부터의 해방만을 구원의 길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위해서 언어를 총동원해야 하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시대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온 참여문학 대 순수문학의 논쟁은 참으로 소모적이며 슬픈 일이었습니다. 나로서는 그런 두 가지 문학의 구별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상황으로부터의 구원을 성찰의 주제로 삼는 문학을 구태여 참여문학이라고 부르고, 다른 한편으로 내적 인간조건을 생각하고 그 조건과의 관련에서 구원을 찾는 것을 주된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 문학을 순수문학이라고 부르기로 한다면(그 이외로 달리 어떻게 구별하겠습니까?), 그 두 가지 중의 한 가지만이 진정한 것이라고 말할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가 항상 그 양쪽의 조건에 걸쳐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과거의 한국문학이 그렇듯이 사회적 위기가 절박한 시대에는 전자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에는 후자가 눈에 더 많이 띄기는 하겠죠. 하지만 위기의 시대에도 어떤 작가는 시대고보다는 죽음을 넘어서는 절대적 가치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시대의 요청에 어긋난 듯한 그런 가치의 추구가 도리어 위기의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의 가치가 후일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가령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를 잠시 살펴봅시다. 그 시는 1952년에 광주에서 쓰였다고 합니다. 1952년이라면 바로 나 자신이 그곳에 막 설치되었던 육군보병학교에 근무하던 때입니다. 그때 광주는 전쟁 수행을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야 했던 후방의 군인 도시인 동시에, 지리산의 공산 유격대에 둘러쌓인 위험지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서정주가 그 시에서 무등산을 바라보며,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라고 읊은 것은 일종의 배반이었나요? 소위로 임관되어 일선에 나간 지 열흘이면 벌써 시체가 되어서 돌아오고, 밤이면 유격대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기가 일쑤였던 곳에서 옥돌같이 호젓이 묻히고, 청태가 자욱히 낀의연한 존재로서 자신을 무등산과 일체화한다는 것은 분명히 사회적 상황의 밖으로 벗어난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서정주는 당시의 비참한 상황 앞에서 펄펄 뛰거나 슬픔에 젖은 시를 썼어야 할까요? 천만의 말입니다. 애국적인 혹은 감상적感傷的인 언어가 시의 형태를 띠고 난무했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서정주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시인은 아마도 이런 초월적 상념을 구원의 원리로 삼음으로써, 자기로서는 어찌할 수 없었던 상황을 견뎌내려고 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상황에 대처하는 길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시대에 무관심하게 보이고 또 의식적으로 시대에 등을 돌린 많은 작품들을 인류의 귀중한 유산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런 작품들은 때로는 피안彼岸에 존재하면서도 이 지상의 삶이 암시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채울 수 없는 갈증”(보들레르)을 담고 있기도 하고, 이른바 리얼리즘에서 출발하면서도 미의 창조를 영원한 가치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플로베르). 또한 동양에서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가 여실히 보여주듯이 세속을 떠나고 자연의 품에 안겨 삶을 종용從容히 마감하겠다는 자세, “천명을 즐길 뿐 또 무엇을 의심하랴樂夫天命復奚疑는 담담한 자세에서 구원의 원리를 찾아보는 일이 자고로 많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렇듯 시대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대결하지 않음으로써 도리어 뜻 깊은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 예를 우리는 그 이외로도 얼마든지 들 수 있을 터입니다. 내 생각에는 오히려 이른바 참여문학보다도 그런 경향의 작품이 역사에서 더 많이 살아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말하지만 후대가 되면 될수록, 과거의 정치적 상황이나 이데올로기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던 작품 중에서,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적 인간상과 구원의 문제를 찾아보려고 하는 일도 많습니다. 가령 오늘날 고대 그리스의 문학은 많은 경우에 그런 입장에서 읽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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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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