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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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회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지니고 있는 세 가지 욕망, 즉 창조욕, 지식욕, 유희욕과 관련시켜서 문학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의 문학적 표현들이 각각 일상성으로부터의 해방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한데, 오늘 생각해보려는 또 하나의 욕망, 즉 구원을 향한 욕망은 그 세 가지 욕망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실에 없는 작품을 만든다는 행위도, 참에 이르려는 지향도, 또 유희를 통해서 자아를 회복하고 언어의 새로운 차원에 참여하겠다는 욕심도 모두 그 나름대로 일상적 현실 밖에서, 혹은 그것을 넘어서서 더 좋은 경지를 만들거나 만나보자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영속되지 않고 덧없는 것일지라도, 한 경지로부터 다른 경지로 옮아다닐지라도, 또 그 희망이 끝끝내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인간은 불만스러운 현실을 어떻게든지 극복하려고 시도하며, 문학은 그 욕망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런 각도에서 문학을 생각해보려고 해서 제목을 문학과 구원이라고 붙였습니다.
그러나 구원이라는 말이 과연 마땅한지 모르겠군요. 그 말은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는 일이 많고 특히 기독교 신자들이 애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요단강 건너가서 누리는 구원, 인류 구원을 위한 기도와 같은 말을 우리는 자주 듣습니다. 사실, 서양의 많은 작품들은 단테의 『신곡』을 비롯하여 바로 이러한 기독교적 구원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또 기독교도가 아니더라도 종교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가령 간디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없는 인생은 원칙 없는 인생이요, 원칙 없는 인생은 키 없는 배와 같다.”
이런 말을 듣고 지당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여러분들 중에도 많을 겁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중에는 매우 노골적으로 반종교적 입장에서 인생의 길을 찾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상한 시인이나 소설가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교적 차원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서 더 넓게 사용될 수 있는 적당한 말이, 구원이란 말 말고 달리 없을까 하고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빈약한 언어능력으로서는 새로운 말을 찾아내지도 못하고 만들어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연유에서 결국 구원이라는 말을 그대로 쓰기로 한 것이죠. 따라서 여기에서 그 말은 형식과 내용과 가능성이야 어떻든 간에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곤경에서 벗어나기’ ‘더 좋은 경지를 찾기’ 혹은 ‘행복의 추구’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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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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