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라는 이름의 언어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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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회

우리는 소설이나 희곡작품에서 전개되는 이러한 언어유희를 두고 흔히 문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문학작품에 관해서 문체가 좋다고 말할 때 그것은 결코 말을 멋있게 꾸몄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제의 존재를 알리고 주제를 유지하며 들어내 보이기에 필수적인 기표를 사용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작가에게 있어서 문체란 프루스트의 말마따나 화가에게 있어서 색채가 그렇듯이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비전vision의 문제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니 한 가지 여러분에게 일러두어야 할 것이 생각나는군요. 그것은 문체는 인간이다라는 흔히 쓰이는 말에 우리가 주어야 할 마땅한 의미입니다. 이 말은 문체를 보면 그 글을 쓴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 높은 인격의 소유자는 자연히 고상한 글을 쓰고 사람됨이 천하면 글도 천하다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굳이 이 말을 애용하고 싶다면 문체는 그 글을 썼을 때의 작가의 인간관이나 세계관을 나타낸다는 뜻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 증거로, 카뮈라는 동일한 작가의 소설이지만, 우리가 간단히 살펴본 이방인의 첫부분의 문체와, 부조리에 반항하는 공동체적 인간의 모습을 그린 페스트의 문체는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문체를 통해서 작가의 인격을 살핀다는 엉뚱한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그것은 이 문체라는 이름의 언어유희그것은 낱말과 비유의 사용으로부터 문장구조를 거쳐 전체적 구도에 이르기까지, 시와 마찬가지로 무한한 다양성을 보이는 것이지만앞에서 우리 자신을 활짝 열고 그것에 담긴 의의意義를 우리 나름대로 밝혀나가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읽기라는 행위이며 또한 일상성을 초월한 차원에서 그 고단한 언어유희를 추구해나간 작가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합니다.

 

 

추리의 놀이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놀이와 문학의 관련을, 문학에 나타난 놀이와 문학적 언어 자체의 놀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측면을 생각해보죠. 그것은 시건 소설이건 간에 문학 텍스트를 읽는다는 행위는 추리의 놀이를 이어나가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책을 열자마자 인물의 행동과 사건의 추이와 이야기의 전개에 대해서 스스로 이유를 묻고 의문을 품고 예측을 하면서 책장을 넘겨나갑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잘 쓰여진 추리소설은 문학의 원형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추리소설 중에서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것들이 가장 순수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요새 많이 읽히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보여주는 바와 같은 도덕적·종교적 문제는 일체 내포되어 있지 않고, 오직 누가 범인이냐는 것을 알아맞히는 지적 유희꼭 숨은그림찾기나 미로 탈출과 같은 그런 지적 유희로만 텍스트가 꾸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한 가지 예로 가장 인기가 있다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간단히 분석해보죠.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여덟 명의 남녀가 무인도에 있는 화려한 저택으로 초청되는데 그곳으로 가보니 집주인은 없고 그들의 시중을 들 하인 내외가 있을 뿐입니다. 이윽고 그 열 명이 차례차례로 모두 죽어갑니다. 배가 육지에서 다시는 오지 않았으니까 필경은 내부자의 소행일 텐데, 과연 살인자가 누구이며 왜 죽였는지 알아맞혀 보세요 하는 것이 소설이 제시하는 수수께끼입니다.

한데 모든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도 독자의 추리를 유도하는 척하면서도 사실은 빗나가게 하는 정보를 부단히 쏟아놓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추리소설이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독자의 두뇌가 그러한 정보에 휘말려서 부단히 궤도 수정을 하고, 그 궤도 수정이 도리어 끝까지 미로에서 헤매는 결과를 가져오는 종류의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경우에는, 야릇한 전축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서 열 사람이 각각 제 나름대로 살인에 가담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폭로되어,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서로를 죽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독자가 품도록 텍스트가 짜여져 있습니다. 한데 독자의 의심은 작중인물들의 의심과 중첩됩니다. 일행 중에서 한 사람씩 시체로 발견될 때마다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살인자를 추정하는데, 독자는 그 추정에 끌려들어 의심이 가중되고 그럴수록 더욱 그 추리는 빗나갑니다. 결국 열 명이 끝끝내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두 살해되고, 경찰조차도 사건을 규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추리소설이 사건을 미궁에 빠뜨려놓은 채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성과 없이 지적 놀이를 이어온 독자들의 의표를 찌르는 해답을 마지막 몇 장에서 제시하고는,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 참 기막히게 꾸몄군!” 하는 감탄을 자아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보면, 그 기괴한 연속살인 사건이 열 명 중에서 가장 의심이 가지 않았던 전직 판사의 환상적인 살인욕망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 자신의 교묘한 자살을 포함한 사건 일체의 내용이 그가 바다에 던진 병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좀 엉뚱하다는 인상은 남지만, 독자로 하여금 긴장을 풀지 않고 지적 놀이를 끝까지 이어가게 만든 크리스티의 술책은 탄복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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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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