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언어유희―소월의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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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에서는 문학적 언어유희의 경우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특히 시는 언어유희의 결정체이며, 그중의 어떤 낱말 하나라도 바꾸어놓으면 시 전체가 무너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I like Ike”의 경우와 마찬가지죠. “I like Ike”가 메시지 그 자체로서의 매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다른 기능을 겸하듯이, 시의 경우에도 역시 그 기표의 매력은 발신자인 시인의 감정을 나타내는 정서적情緖的 기능이나 혹은 어떤 신비스러운 대상을 환기시키는 지시적指示的 기능 따위를 겸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 표현과 의미가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죠.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I like Ike”의 경우에는 언어의 시적 기능이 자발적이 아니며 정치적 목적에 종속되어 있는 반면에, 시는다시 말해서 어용 시인이 일삼는 타락한 시적 모작模作이 아닌 진실한 시는자발적 행위이며 일상적인 이해타산을 떠난 언어유희라는 점입니다.

이런 언어유희의 한 본보기로서 여러분 모두의 눈에 익고 귀에 익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들어보죠. 그 몇 줄 안 되는 시구는 한국민족을 대표할 만한 가락과 정서와 의식을 담뿍 담았다 하여 무수한 해설과 해석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한국시를 다루는 문학사가나 비평가나 교사가 이 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용인할 수 없는 결격사유缺格事由처럼 되어 있죠. 한데, 시의 의미와 관련된 언급들은 모두 시의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슬픔을 도리어 축복과 인고忍苦로 승화시켰다는 것도, “나 보기가 역겨워가시는 님 앞에 뿌리는 진달래꽃의 이미지에서 서정화抒情化된 민족주의적 의식을 찾아보는 것도, 또 불교에서 말하는 산화공덕散華功德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도 모두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 이외로도 가지가지의 해석이 가해지고 있는 것은 이 짧은 시가 풍요한 의미를 지닌 걸작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말해줍니다.

그뿐 아니라 시의 형식에 관한 해설도 많습니다. 7·53음보에 대해서, 그것이 영변에 약산/진달래꽃이라는 변형에 의해서 중단되는 현상에 대해서, 토속적 사투리에 대해서,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는 파격적 문장구조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들은 이 시를 감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정보입니다. 이 점에서는 나도 한마디 보태보겠습니다. 내 생각에 진달래꽃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그 안에 ㅊ, , , ㅍ과 같은 거센소리가 없어서 보드럽고 고른 흐름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이라는 구절을 읊을 때는 꼬츨이라고 연음이 되어 거센소리가 생기겠지만, 그것을 옛날 사람들처럼 꼬슬이라고 발음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읊으면, 거센소리가 환기시키기 쉬운 거역이나 노여움을 멀리하면서 슬픔을 새기려는 심정에 더욱 잘 부합할 뿐 아니라, 이 셋째 연에서 되풀이되는 ㅅ의 음가(그것은 내 귀에는 조용한 사라짐을 나타내는 것처럼 느껴지는군요)를 더욱 고양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 같습니다. 아마도 소월은 이 시의 주제에 알맞게 거센소리가 없는 언어유희를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을지 모릅니다.

내가 제멋에 겨워서 괜한 소리를 한 것 같군요. 다만 여러분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을 여기에서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시는 요약할 수도 다른 말로 바꾸어놓을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가령 진달래꽃은 무슨 뜻이오? 그건 이별의 슬픔을 참고 견뎌내겠다는 것이지. 알 만하군하는 식의 문답으로 시의 의의意義가 밝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또 좋은 해설은 시의 이해에 도움을 주긴 하겠지만, 그것 자체가 시의 이해는 아닙니다. 진달래꽃과 같은 서정시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적知的인 해석은 감성적인 언어유희 속으로 녹아들어가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자니 언어와 씨름하듯 한 마디 한 마디를 다듬었던 폴 발레리의 다음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나는 건축가처럼 말을 쌓아올리지만 여러분은 그것을 음악으로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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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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