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징가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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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회

이상으로 나는 놀이를 보는 세 가지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놀이의 본질이나 의미가 충분히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노는 인간Homo Ludens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호이징가Huizinga가 내린 정의를 소개하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합니다. 그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놀이는 일정한 한계를 지닌 시간과 장소 내에서 전개되는 자발적인 행위나 활동이다. 그것은 자유롭게 받아들여진 규칙, 그러나 완전히 구속적인 규칙을 따른다. 그것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긴장과 기쁨의 감정을 가져오며 또한 일상생활과는 다르다는 의식을 가져온다.”

이 널리 알려진 놀이의 정의는 어린이들의 장난으로부터 어른들의 가지가지의 놀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해당된다고 호이징가는 주장합니다. 그 주장은 합당해 보입니다. 우선 어떤 놀이이건 간에 그것이 자발적이 아니면 놀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령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하는 일이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려고 했을 때 얘야, 너는 몰라도 좋으니 나가 놀아라라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쫓겨난 경험을 여러분도 가지고 있겠죠. 그런 경우의 놀이는 강요된 놀이이며 조금도 재미가 없는 고역 같은 것이 되기가 쉽죠. 또 자진해서 지키는 일정한 규칙도 없고 또 시간과 장소의 제한도 없는 축구시합은 성립될 수가 없죠. 그리고 골치 아픈 일은 잠시 접어두고 바둑이나 두자고 할 때 우리가 맛보려는 것은 일상생활이 베풀 수 없는 특별한 긴장과 기쁨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호이징가의 매력 있는 정의에 대해서 한두 가지 부언해둘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그가 열거한 특징을 모든 놀이가 두루 갖추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규칙이 엄격히 지켜지는 놀이는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규칙을 엄격히 지키기는커녕 마구 뛰어놀며 또 물건을 내던지거나 부수면서 놉니다. 혼자 연을 날리거나 인형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경우에도 자율적 규칙이 작용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놀이의 규칙을 수용하고 그 테두리를 지키면서 노는 것은 집단적 놀이의 경우이며, 또 집단적 놀이에 있어서조차 때로는 축제에서와 같이 규칙 파괴가 놀이의 기쁨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상상의 놀이에 있어서는 규칙은 물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놀이가 주는 긴장과 기쁨은 순수하지가 않고 거기에는 타자他者와의 실존적 관계가 끼어들기도 합니다. 그것은 협동, 경쟁, 허세, 우월감, 잔혹성 등의 여러 동기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마디로 호이징가의 정의는 놀이를 생각하기 위한 하나의 참고점이 되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고 어떤 면에서는 미흡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자발성이나 일상생활로부터의 일탈逸脫과 같은 매우 중요한 측면을 지적하기는 했지만, 놀이의 순수성만을 너무 강조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혹시 기회가 있으면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가 지은 놀이와 인간이라는 책을 읽고 더 넓은 견해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문학작품과 놀이

 

그렇다면 문학은 어떻게 놀이와 관련되는 것일까요? 호이징가는 그 책에서 원래 제의祭儀와 예술과 놀이는 삼위일체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그런 역사적 고찰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정설定說이 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오늘날 문학작품을 왜 쓰고 읽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려는 이 강의의 목적과도 크게 부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고 왜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할 때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고찰로부터 그 반성을 시작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또한 나는 여기에서는 연희演戱에 관한 이야기도 제외하겠습니다. 그 분야는 문학적 언어를 포함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동작이며, 연희에서의 놀이의 요소는 이 동작과 불가분不可分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쓰기와 읽기만으로 성립되는 문학과는 다른 갈래입니다.

나는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결국 문학작품과 놀이와의 관련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는 놀이가 작품에서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작품 그 자체가 말의 놀이가 아닐까 하는 각도에서 문학을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품 읽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상상과 추리의 놀이라는 견지에서 문학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제 그 세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죠.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으로서는 몇몇의 단편적인 예를 생각나는 대로 간단히 들어보면서, 놀이의 뜻과 범위가 얼마나 넓으며, 위에서 말한 호이징가의 정의로 모든 놀이가 수렴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되새겨볼까 합니다. 내 머리에 우선 떠오르는 것은 사르트르가 그의 유년기를 회고한 소설 같은 자서전 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놀이입니다. 이 놀이는 매우 불순합니다. 갓 나서 아버지를 잃은 어린 사르트르는 처녀와 다름없는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 기생寄生합니다. 그래서 그는 마땅한 자리를 못 가진 식객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식하고는 어떻게든지 해서 그 신세를 면해보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가족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존재해보려고 합니다. 그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가장인 외할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그 귀염둥이가 되는 것이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신동 같은 손자가 생겼으니 여한이 없다는 말이 노인의 입에서 저절로 나오도록 꾀를 쓰는 것이죠. 이렇듯 할아버지에게 생존의 기쁨을 주고 그럼으로써 자신도 생존의 이유를 스스로 마련하는 것, 이것이 어린 사르트르의 놀이의 목표가 됩니다. 그는 어린이 같으면서도 신묘하게 들리는 말을 하고, 책을 줄줄 외우고, 할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서 덥석 안기고, 숨어 있다가 변장을 하고 갑자기 나타나곤 합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황홀경에 빠집니다. 한데, 그것이 과연 놀이일까요? 놀이라기보다 연기가 아닐까요? 그러나 진실한 놀이와 연기 사이의 아물아물한 경계를 어떻게 가릴 수 있을까요? 가령 그림을 그리고는 그것을 제 어머니에게 가지고 가서 엄마, 나 잘 그렸지?” 하고 칭찬을 구하는 어린이의 행위는 놀이일까요, 혹은 연기일까요?

아무튼 간에 어린이의 놀이라고 해서 그렇게 순진무구한 것만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작가들은 원래 겉으로 나타나는 상식적인 것보다도 안에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린이의 놀이를 다루는 경우라도 그 즐거움만이 아니라, 즐거움의 심리적 원천을 지적하기가 일쑤입니다. 여러분에게 낯선 이름들이라서 누구의 작품이라고 일일이 밝히지는 않겠지만, 내가 읽은 소설들 중에는 가령, 남보다 잘났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병정놀이를 하고(그래서 힘센 아이가 대장이 됩니다), 어른의 흉내를 내기 위해서 소꿉장난이나 심지어 장례식 놀이를 하고(이런 예를 들자니 맹모삼천孟母三遷의 일화가 생각나는군요), 또 갓난이에게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이거나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따위의 짓궂은 쾌락을 겨냥하는 아이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호이징가가 제시한 놀이의 본질은 말하자면 증류수와 같은 것이며, 실제의 놀이는 아이들의 경우에조차 불순물이 섞인 자연수와 같고 때로는 오염된 물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작품에 나타난 놀이

 

시나 소설은 인간의 모든 일을 별의별 입장에서 다루는 팔방미인이기 때문에 놀이에 대한 관심도 그 안에 포함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대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놀이에 관해서도 문학작품이 묘사하거나 고찰한 내용을 어떤 한 체계나 유형類型으로 완전히 정리해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그런 각도에서의 연구를 보여주는 책도 드물고, 또 심지어 문학에 나타난 놀이의 가지가지의 양상을 들어내 보이려는 선문집選文集도 여간해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또 앞서 말했듯이 놀이 그 자체를 주제로 삼은 괄목할 만한 문학작품도 별로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놀이의 욕망이 만듦과 앎을 향한 욕망과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관심이 엷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놀이가 지식 습득이나 노동에 비해서 진지한 활동이 아니라는 인식이 사회를 지배해온 탓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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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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