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안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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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회

이런 대조와 엇갈림의 방법으로 사용된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나치에 의해 추방되었으며 나중에 동독 국가를 작곡한 사람이다가 맡은 음악이다. 이 영화에서 음악 역시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플루트와 바이올린을 이용한 부드러운 톤은 현재를 나타내고, 피아노와 트럼펫을 사용한 급박한 피치카토의 톤은 과거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레니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 의지의 승리의 필름 클립을 사용하여 1933년 나치 당대회 모습을 보여줄 때 음악은 더 커지고 빨라진다. 그의 음악은 할리우드 영화 음악과는 격이 다르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음악은 우리를 센티멘털하게 만들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감정에 직접 호소하여 관객을 조종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해 이 영화의 음악은 그런 목적과는 거리가 먼 품위를 유지하면서, 영화의 기조인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도와줄 뿐이다.

그런데 영화의 뒷부분에 가서 잔혹성이 격화될 때 오히려 음악은 격정을 풀고 가벼운 톤으로 바뀐다. 수많은 사체들을 불도저로 밀어 화장터로 옮기는, 차마 눈 뜨고 못 볼 끔찍한 장면에서 아이슬러는 가볍게 날아가는 듯한 플루트 음을 사용했다. 왜 그랬을까? 용기를 가지고 과거의 참혹함에 직면해야지 그것을 회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음악마저 고통스러운 톤을 강조하면 우리는 어쩌면 그 참담한 기억을 차라리 떨쳐버리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의 음악은 가장 무시무시한 장면에서 그것을 감당하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면서, 우리가 보고 있는 그 참혹한 사건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것을 돕고 있다.

이 영화의 제목으로 쓰이는 밤과 안개라는 말은 1941127일자 나치의 법령 ‘Nacht und Nebel’에서 유래했다. 그 법령은 이렇게 시작된다. “1조 점령국 내에서 독일 국가와 점령군의 안전과 대기태세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에 대한 처벌은 원칙적으로 사형으로 한다. 2조 전항에서 규정한 범죄는 범법자(적어도 주동자)들에 대해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또 처형이 아주 빠른 시간 내에 완수될 수 있을 때에만 점령국에서 취급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범법자(적어도 주동자)들은 독일로 압송한다.” 이 압송 과정은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게 밤과 안개 속으로사라지듯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 제목은 엄청난 범죄 행위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새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말한다. 동시에 우리의 기억 역시 밤과 안개 속으로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나치 전범들에 대한 재판을 다룬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책임의 문제가 제기된다.

 

나는 책임이 없습니다.” 간수가 그렇게 말한다.

나는 책임이 없습니다.” 장교도 그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단 말인가?

 

내레이션의 이 단호한 물음 역시 이중적이다. 우선은 수용소의 비극을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따진다. 수용소의 말단 간수나 중간 간부들은 모두 자신들은 위에서 시킨 일을 했을 뿐이라며 발뺌하려 한다. 과연 그런가?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는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그런데 그렇게 따진다면 우리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시대 그 장소에 있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책임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건을 기억하지 않고 또 다른 사악한 힘이 발동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 역시 추궁을 당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기억해야 할 책임, 학살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왜 그런가? 수용소를 만든 그 악의 능력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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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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