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안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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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회

알랭 레네가 이 영화를 만들 때 그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분명 알제리 사태였다. 그 자신이 나중에 분명히 말했듯이 요점은 알제리였다”.* 당시 프랑스 군인들이 식민지 알제리에서 온갖 고문과 투옥, 살인을 저지르고 있지 않았던가? 알제리 전쟁(1954-1962) 중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100만 명을 학살한 것이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수용소는 멀리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니다. 우리의 기억이 밤과 안개 속으로사라져버린다면 수용소는 언제든 우리에게 다시 닥칠 수 있다.

감독의 이런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이 영화를 다시 보면 한 가지 매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이 영화 내내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를 만들면서 어떻게 유대인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란츠만 같은 입장에서 보면 이는 홀로코스트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침해일 것이다. 유대인을 일부러 거론하지 않은 이유는 감독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홀로코스트가 단지 유대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이 영화는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희생자의 이야기이며, 유대 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영화 중에 프랑스 헌병이 유대인 압송 과정을 감시하는 사진이 들어가 있는 것도 이런 문제의식과 관련이 있다. 프랑스 관객이라면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움찔했을 것이다(마치 독립운동가를 고문한 조선인 순사의 모습을 보는 느낌 같다고나 할까).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피티비에Pithiviers를 찍은 것인데, 이곳은 프랑스 내 유대인을 집결시킨 다음 강제 수용소로 보내는 작업을 하던 곳이다. 그 업무는 프랑스인 헌병이 담당했다. 프랑스가 나치의 피해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점은 당시로서는 차마 인정하기 힘든 미묘한 문제였다. 한때 프랑스 검열 당국은 사진의 일부분을 흐릿하게 만들도록 강요했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불편하다 못해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포르노그래피처럼 자극적인 이미지를 던져주면서 단순히 고통을 강조하고 눈물이 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문제를 제시하고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끔찍한 모습 앞에서 전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율을 일으키는 그 역사를 살펴보고 그것의 현재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지적으로 도전적이며, 우리의 사유를 자극한다. 프랑스의 영화감독 트뤼포는 이 영화의 힘은 가공할 정도의 점잖음terrible gentleness”이라고 했다. 이 영화의 미덕은 그런 품격 있는 방식을 통해 우리가 참혹한 과거를 회피하는 대신 용기를 가지고 직시하도록 만든 데에 있다.

 


* 임재철 엮음, 알랭 레네, 한나래, 2001, 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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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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