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안개 (1)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82 회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Nuit et Brouillard(1955)는 거의 60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도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다큐멘터리 중 하나이며 홀로코스트를 다룬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레네 역시 홀로코스트의 재연 불가능성이라는 문제를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 어떤 이미지와 설명으로도 집단 수용소의 잔혹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으며, 따라서 완벽한 재연은 불가능하다. 현재 우리에게 남은 것은 단지 얼마 안 되는 과거의 흔적에 불과하다. 과거를 기억해야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고민이 이 영화의 기저에 녹아 있다. 과연 과거의 집단 수용소를 어떻게 기억하고 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가 선택한 방식은 현재와 과거의 비연속적인 대조이다. 이 영화는 현재를 나타내는 컬러 필름과 과거를 나타내는 흑백 필름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마치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듯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빈 땅 위를 서서히 이동하며 촬영해나간다. 카메라는 현재의 아우슈비츠를 조사하는 중이다. 기찻길을 지나 화장실과 바라크(막사)를 훑는다. 그러나 그곳은 단지 텅 빈 공간일 뿐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풀만 자라는 그곳에서 별다른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가스실 안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이 절망적으로 콘크리트 천장을 후벼 파서 만들어진 손톱자국 정도를 겨우 찾을 수 있을 뿐이다(얼마나 절망적이었으면 콘크리트에 손톱자국이 났을까). 분명 엄청난 학살이 있었지만 카메라는 끝내 증거를 찾지 못하고, 공허만 발견한다. 지난날의 수용소를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카메라는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는 대신 성찰을 촉구한다.

학살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이 사건을 그대로 잊을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우리는 우선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성찰을 위한 자료를 모아야 한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과거를 나타내는 흑백 부분으로서, 당시의 필름 조각들과 사진 등의 자료를 편집한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참고 보기 힘들 정도의 참혹한 모습들이다. 이 영화는 가까스로 찾은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서로 대조시키며 우리에게 말을 건다. 과거의 자료들을 단순히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며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묻는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증인이 된다.

이 수용소의 실제 가운데 남은 것…… 이 수용소를 만든 사람들이 경멸했고 이 수용소에서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이 수용소…… 그 남은 것 가운데 우리는 오직 껍질만을…… 그림자만을 보여줄 수 있다.” 내레이션은 의도적으로 말을 더듬고 있다. 말을 하다 중간에 쉬거나 혹은 일부러 끝을 맺지 않는다. 이렇게 보여줄 수 없고 말할 수 없음을 인정함으로써 홀로코스트는 원래의 복잡성을 그대로 유지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단지 껍질그림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곧 수용소에 대해 기억하고 해석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기억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교접할 때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내레이션이 과거의 잔혹한 장면을 이야기할 때 현재 시제를 쓰고, 현재의 모습을 보여줄 때는 과거 시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 과거의 이미지에 현재가 투영되고 현재의 이미지에 끊임없이 과거가 개입하게 된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