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안개: 쇼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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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회

그렇다면 란츠만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이런 인터뷰를 진행했을까? 우리는 다양한 증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야말로 엄청나게 많은 홀로코스트의 디테일들을 접하게 된다. 그중 어떤 것들은 비슷한 내용의 반복일 수도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오히려 서로 다른 내용을 이야기함으로써 부분적으로 모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란츠만의 생각에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사건은 도저히 하나의 설명틀 안에 담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거기에는 상이한 증언들, 다양한 해석, 복합적인 관점이 뒤섞일 수밖에 없다. 감독의 의도는 이 어마어마한 사건을 완전히 이해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건은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일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은 그 긴 시간(하루 종일이든 밤새워서든) 고통스러울 정도로 계속되는 증언들을 접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 비극의 전모가 명료해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더 흐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가운데 다만 암흑의 공포가 더 크게 확산되어 우리를 압도할 뿐이다. 이처럼 이해할 수 없고, 전달 불가능하며, 쉽게 말해서는 안 될 일을 명쾌하게 정리한다는 것은 곧 왜곡과 거짓말이 수반됨을 의미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홀로코스트를 두세 시간짜리 드라마로 만드는 것은 진부화의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되고 만다.

감독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영화의 끝부분에 나온다. 카메라가 서서히 한 연못을 줌인zoom-in하여 비춰주면서 이곳이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화장한 재를 버린 곳이라고 설명한다. 카메라가 수면 가까이 클로즈업할수록 수면의 형상이 흐려지고 결국 회색빛만 화면에 가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감독의 의도를 잘 드러내는 메타포일 것이다. 그 엄청난 사건을 가까이 들여다보려 하지만 결코 명료하게 알 수 없다는…….

그러나 여기에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정말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는가? 란츠만의 영화 쇼아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해석도 가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이야기만 할 수 있고, “우리는 알 수 없다는 앎을 얻은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는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란츠만 역시 본인 특유의 해석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350시간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 자신의 해석에 필요한 부분을 취하고 나머지는 버렸다. 우리는 그가 버린 인터뷰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 사학개론 수업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바처럼, 사료 중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리느냐 하는 첫 과정부터 이미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다음 편집 과정에서는 더 명확하게 감독의 철학이 구현된다. 이 영화의 구성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시도한 이상빈에 따르면* 이 영화는 시몬 스브레니크의 노래로부터 시작하여 바르샤바 게토의 투사들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발단-전개-결말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희생자의 부정적이고도 수동적인 이미지에서 투사의 적극적인 증언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 이 영화는 증언을 있는 그대로 채록한 객관적인 내용의 영화가 아니라 감독 개인의 견해가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개입하고 있는 영화이다. 심지어 감독은 증언을 일부 연출하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한 아브라함 봄바의 증언은 이스라엘의 이발소를 빌려서 찍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봄바가 수용소에서 머리를 깎으며 경험한 사실을 더 확실하게 재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크다고 하지만 사실 이것이 쉰들러 리스트의 재연 연출과 근본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 이상빈, <쇼아>를 중심으로 살펴본 수용소 영화 분석, 역사와문화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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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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